道常無爲而無不爲,
候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도는 항상 작위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루지 않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이룬다.
군왕이 만약 이러한 무위자연의 도를 잘 지킬 수가
있다면, 만물도 스스로 잘 생성화육할 것이다.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만물은 살아 자라남으로써 여러 가지 욕심이 일어
나게 마련이다. 무명의 도를 가지고 누르고자 한다.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진박한 무명의 도로 누르면 만물도 장차 무욕하게 된다.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욕심을 일으키지 않고 허정하면 천하가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제 32장의 논지와 대충 같다. 이름지어 말로 부를
수 없는 허정(虛靜)의 본체인 도에서 만물이 나오고
모든 조화가 이루어짐을 밝혔으며, 따라서 군주도
도를 지켜야 만물이 자화(自化)함을 강조했다.
범응원은 말했다. [허정염담은 무위다. 하늘, 땅, 사람및
만물이 도를 따라 운행되고 생육되므로 이루지 않음이
없다(虛靜恬淡, 無爲也. 天, 地, 人, 物得之以運行生育者, 無不爲也)>]
그러나 현상세계에 나타난 만물은 욕구가 없을 수 없다.
도의 본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이다.
무형적 존재이다. 따라서 욕구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유형적 존재에는 욕구나 지향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노자는 <만물은 살아 자라남으로써 여러 가지
욕심이 일어나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현상계에서 욕구가 일어나면 그때에는 다시
<진박(眞朴)한 무명(無名)의 도>로 욕구를 진정 시키고
막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욕구가 없게 된다고
했다. 즉 <만물도 장차 무욕하게 되는>것이다.
이상을 다시 정리하면 바로 노자의 복귀사상이 된다.
만물은 무(無)인 도에서 나왔다. 만물은 유형적 존재
이므로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다시 도로
돌아가면 욕구가 없게 된다. 즉 무(無-道)→만물(萬物)
→용구(欲求)→도(道-無欲)가 된다.
이렇게 도를 따라 무욕의 경지로 되돌아갈 때 천하도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특히 제37장은 노자의 ≪도덕경≫ [상편(上篇)]
<도경(道經)>의 끝장이다. 끝장답게, 도는 <작위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루지 않는 것 없이 모든 조화를
이룬다>고 하였으며 도를 따라 만물이 자화(自化)하나
현상계에 있으면서도 다시 도에 복귀하여 무욕(無欲)
의 경지에서 안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위자연의 도는 의식적이거나 자의적인 작위를
하지 않고 만물은 도를 따라 자화(自化), 즉 스스로
살고 스스로 자란다(自生自長). 그렇거늘 인간 사회
에서는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조작하고 나의 주장,
나의 힘을 남에게 강요하여 강압적으로 인간을 스스
로 자라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사욕(私欲), 탐욕에
의해 자연의 도를 어기고 부자연(不自然), 즉 인위
적으로 자화(自化)를 파괴하고 방해하는 것이다.
候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도는 항상 작위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루지 않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이룬다.
군왕이 만약 이러한 무위자연의 도를 잘 지킬 수가
있다면, 만물도 스스로 잘 생성화육할 것이다.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만물은 살아 자라남으로써 여러 가지 욕심이 일어
나게 마련이다. 무명의 도를 가지고 누르고자 한다.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진박한 무명의 도로 누르면 만물도 장차 무욕하게 된다.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욕심을 일으키지 않고 허정하면 천하가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제 32장의 논지와 대충 같다. 이름지어 말로 부를
수 없는 허정(虛靜)의 본체인 도에서 만물이 나오고
모든 조화가 이루어짐을 밝혔으며, 따라서 군주도
도를 지켜야 만물이 자화(自化)함을 강조했다.
범응원은 말했다. [허정염담은 무위다. 하늘, 땅, 사람및
만물이 도를 따라 운행되고 생육되므로 이루지 않음이
없다(虛靜恬淡, 無爲也. 天, 地, 人, 物得之以運行生育者, 無不爲也)>]
그러나 현상세계에 나타난 만물은 욕구가 없을 수 없다.
도의 본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이다.
무형적 존재이다. 따라서 욕구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유형적 존재에는 욕구나 지향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노자는 <만물은 살아 자라남으로써 여러 가지
욕심이 일어나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현상계에서 욕구가 일어나면 그때에는 다시
<진박(眞朴)한 무명(無名)의 도>로 욕구를 진정 시키고
막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욕구가 없게 된다고
했다. 즉 <만물도 장차 무욕하게 되는>것이다.
이상을 다시 정리하면 바로 노자의 복귀사상이 된다.
만물은 무(無)인 도에서 나왔다. 만물은 유형적 존재
이므로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다시 도로
돌아가면 욕구가 없게 된다. 즉 무(無-道)→만물(萬物)
→용구(欲求)→도(道-無欲)가 된다.
이렇게 도를 따라 무욕의 경지로 되돌아갈 때 천하도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특히 제37장은 노자의 ≪도덕경≫ [상편(上篇)]
<도경(道經)>의 끝장이다. 끝장답게, 도는 <작위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루지 않는 것 없이 모든 조화를
이룬다>고 하였으며 도를 따라 만물이 자화(自化)하나
현상계에 있으면서도 다시 도에 복귀하여 무욕(無欲)
의 경지에서 안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위자연의 도는 의식적이거나 자의적인 작위를
하지 않고 만물은 도를 따라 자화(自化), 즉 스스로
살고 스스로 자란다(自生自長). 그렇거늘 인간 사회
에서는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조작하고 나의 주장,
나의 힘을 남에게 강요하여 강압적으로 인간을 스스
로 자라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사욕(私欲), 탐욕에
의해 자연의 도를 어기고 부자연(不自然), 즉 인위
적으로 자화(自化)를 파괴하고 방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