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거늘, 환인이 내려다보니 삼위산과 태백산이 <홍익인간> 사상을 펴기에 알 맞는 곳인지라 천부인 3개를 주고 환웅을 지상에 보내어 인간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그 지
역을 신시라 이르니 이 사람을 환웅천왕이라 부른다. 환웅천왕은 풍백 . 우사 . 운사를 거느리고 곡 . 명 . 병 . 형 . 선 . 오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였다. 그때 같은 동굴 속에 살던 곰 1마리와 호랑이 1마리가 환웅천왕을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환웅은
영험한 쑥 1자루와 마늘20개를 주고 그것을 먹고 햇빛을 100일 동안 보지 말도록 하였다. 곰은 그것을 지켜 37일만에 여자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그 후 곰녀가 신단수 아래서 잉태하기를 기원하므로 환웅천왕이 사람으로 가장하여 그와 결혼하여 아들
을 낳았다. 그 아들은 후에 호를 단군왕검이라 칭하고, 중국의 堯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개국하여 국명을 조선이라 일컬었다."
-위의 단군신화 내용에서 몇 가지의 사실을 밝혀볼 수 있다. 먼저 사상적인 면을 보면 전체 줄거리가 하늘 . 땅 . 사람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하늘의 환인, 땅의 곰, 사람의 단군이다.
그리고 이 3가지 요소를 환웅을 통해서 결합시키고 있다. 이것은 한민족이 하늘 . 땅 . 인간의 삼위일체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단군신화가 위 3요소 가운데 하늘을 중심으로하여 만들어져 있는 것은 한민족의 중심사상이 하늘을 숭배한 것이었음도 알게 한다. 한민
족은 예로부터 스스로를 <천손족>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하늘을 숭배했던 종교사상에서 연 원한 것이었다.
-단군신화는 인간의 출현에 대한 설명도하고 있다. 인간인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지상의 곰의 교합에 의하여 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출현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과 동물의 교합에 의한 것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
에서 보면 신에 의한 창조론과 동물로부터의 진화론을 결합시킨 것이다. 이것은 한민족의 합리적인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단군신화에는 한민족의 종교사상 . 정치 사상 . 사회 사상도 압축해서 나타나 있다. 그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이다. 또 한민족의 의약에 대한 관심도 나타나 있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먹도록 권한 쑥과 마늘은 한민족이 오랫동안 약재로 전승 . 사용해 온 것이다. 이 내용에서 한민족은 먼 옛날부터 쑥과 마늘을 중요한 약재로 믿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단군 신화는 한민족의 역사적 체험도 담고 있다. 신화는 시간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확장하여 단군신화를 시대에 따라 나누어 보면 환인시대, 환웅시대, 환웅과 곰녀의 결혼시대, 단군시대 등 4단계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한민족의 사회발전과정과 동일하다.
-환웅과 곰녀의 결혼시대는 부락연맹체사회 단계이다. 고대에 각 부락들은 대체로 수호신을 가지고 있었다. 부락들이 연맹체를 형성할 때 그들의 수호신들도 연맹을 맺게
되는데 가장 강한 부락의 수호신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종교적 . 사상적 중심이 된다. 환웅과 곰녀의 결혼은 하늘을 숭배하던 부락과 곰을 숭배하던 부락이 연맹체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들의 수호신이 상징적으로 신화 상에 남은 것이다. 실제로는 호랑이숭배 부락
을 포함한 많은 부락들이 연맹체를 형성했겠지만 신화의 내용이 압축되는 과정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하늘숭배 부락과 곰숭배 부락의 수호신만이 신화 상에 남고, 다른 부락의 수호신들은 탈락되었던 것이다. 이 부락연맹체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세력은 하늘을 숭배했던 환웅 부락이었다.
-환웅시대는 부락사회 단계이다. 부락사회는 농경을 기초로 하여 정착생활에 들어감으로써 이루어짐은 앞에서 이미 밝혔다. 단군신화의 환웅에 관한 내용은 농경사회의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환웅이 풍백 . 우사 . 운사를 거느리고 곡물 등 360여 가지의 일을 관장했다는 것이다. 환
웅이 관장한 업무에 곡물이 맨 먼저 등장한 점은 당시가 곡물을 매우 중요시한 농경사회에 진입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풍백 . 우사 . 운사는 기후와 관계가 있는 것인데 농경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바람 . 비 . 구름 등을 신으로 섬겼다. 따라서 풍백 . 우사 . 운사의 등장도 당시가 초기 농경사회였음을 알게 한다. 초기 농경사회는 바로 부락사회였던 것이다.
-환인시대는 무리사회 단계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시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단지 그를 천제로만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그 사회성격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인류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부락사회 이전 단계는 무리사회 한 단계밖에 없다. 그러므로 환인시대는 무리사회에 해당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고찰에서 알 수 있듯이 단군신화는 환인시대는 무리사회 단계, 환웅시대는 부락사회 단계, 환웅과 곰녀의 결혼시대는 부락연맹체사회 단계, 단군시대는 국가 사회(고조선) 단계로서 한민족의 역사적 체험, 즉 인류사회의 발전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단군신화를 고
고학 자료와 연결시켜 보면 환인시대는 1만년 전 이전의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 환웅시대는 1만년 전 후부터 6천여년 전까지의 전기 신석기시대, 환웅과 곰녀의 결혼시대는 6천여년 전부터 4천3백여년 전(서기전 2천3백여년)까지의 후기 신석기시대, 단군의 고조선시대는 서기전 2
천3백여년 전부터 서기전 2세기말까지가 된다. 단군신화는 실로 한민족의 종교 . 사상 . 의약 . 역사적 체험을 총합 적으로 담고 있는 민족사화인 것이다.
단군신화의 내용에 의하면 고조선은 단군에 의하여 건국되었으므로 환인 . 환웅 . 환웅과 곰녀의 결혼 등에 관한 내용은 고조선이 건국되기 이전의 사회상을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의 대부분은 고조선 이전의 시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도 종래에는 단군신화의 전
체 내용이 고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말해 주는 것으로 잘못 파악하여 고조선을 실제보다 훨씬 낮은 사회 단계였던 것처럼 인식하였다. 예를 들면 환웅이 풍백 . 우사 . 운사를 거느리고 곡물 등을 관장한 것은 그 사회가 초기 농경사회였음을 알게 하는 것이므로 고조선은 초기 농경사회,
즉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시대에 해당된다고 보는 견해가 그 예다. 이것은 단군신화를 시간적 관념이나 전후관계에 대한 분석 없이 해석함으로써 일어난 잘못이었던 것이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고조선(古朝鮮 ; 檀君朝鮮)의 첫 임금.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BC 2333년 아사달(阿斯達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우리 나라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으로
는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에 실려 있는 자료가 있을 뿐,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대조를 이룬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이 승휴(李 承休)의 <제왕운기(帝王
韻記)> 권 남의 <응제시주(應製詩註)>에도 <삼국유사>와 비슷한 기술이 보이나, 우리가 단군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는 우선적으로 <삼국유사>의 기록을 사료(史料)로서 인용하고, 따라서 여기에 더 많은 신빙성을 두게 된다. ....
<제왕운기>에서는 <본기 本紀> (본기는 '단군본기'인 듯함.)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상제(上帝)인 환인에게 서자인 웅(雄)이 있었다. ......(아버지가) 일러 말하기를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러 널리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 하여 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귀신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니 이가 바로 단웅천왕이다. .....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셔 사람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 조선지역에 근거하여 왕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시라(尸羅 : 신라?) . 고례(高禮 : 고구려?) .
남북옥저(南北沃沮) . 동북부여 (東北扶餘) .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계이다.1,038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으니 죽지 않은 까닭이다."
단군 신화에 있어서는, 참을성 없는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으나, 곰은 삼칠일만에 여인(熊女)으로 변화하였다. 그리하여 곰은 여신으로 숭상되고, 신령스런 동물로 인식되었다.
삼국유사는 왕력(王曆)에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東明王)을 국조(國祖) 단군의 아들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단군을 하느님(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동일인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에 단군을 우리의 조상으로 특별히 강조하게 된 것은, 몽고의 침입으로 100년 가까이 어려움을 겪던 고려인들에게 몽고족보다 우수한 천손족(天孫族)이라는 민족적 우월성과 자긍심을 가지도록 한 데도 한 요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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