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아르고스의 왕이던 아크리시오스에게는 자식이라곤 다나에라는 딸만
하나 있었다. 혹시 언젠가 아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알아보기 위해 신탁을
찾아갔다가 아들은 없을 것이며, 손자를 보게 되면 그 손자에 의해 죽음을 당
할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아크리시오스는 딸 다나에
를 탑에 가두었다. 철통같은 탑은 외부와는 단절된 채 하늘로만 열려 있었고
유일한 문의 열쇠는 아크리시오스가 늘 지니고 있었다. 그는 하루 한 번씩 딸에
게 식사를 가져다주었고, 새를 제외한 모든 생물의 시선으로부터 그녀를 벗어
나 있게 했다. 어느 날 탑 위를 날아가던 제우스의 독수리가 다나에를 발견했
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독수리는 제우스에게 자기의 발견을 알렸고
제우스는 즉시 그 아름다운 포로를 정복할 생각을 품었다. 문을 통해 탑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그는 하늘을 통해 들어가기로 했다. 이 계획을 실현하
기위해 그는 금으로 된 빗물로 변신하고는 어느 여름 밤 다나에를 향해 쏟아짐
으로써 그녀를 애무했다. 몇 달 후 아크리시오스는 딸의 임신을 알게 되었다. 그
러자 이번에는 딸을 통 속 에 가두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급류에 휩쓸린 통은
섬에 표류했다. 통속에서 빠져 나온 다나에는 아들을 낳아 페르세우스라는 이
름을 지었다. 그 섬의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의 미모에 반해 그녀에게 청혼했
지만 아들에게 전적으로 헌신하고자 했던 다나 에게는 왕의 청혼을 오랜동안 거
절했다. 페르세우스가 열여섯 살이되자, 다나에는 이제 의무로부터 해방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그제서야 폴리덱테스의 구혼을 수락했다.
왕은 성대한 약혼식을 준비하고 인근의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모두들 선물을
가지고 나타났지만 한푼도 없었던 페르세우스반은 빈손으로 와야 했다. 창피한
마음에 술을 많이 마셔버린 그는 식사가 끝나자 이 세상 어디든 찾아가 왕이
원하는 가장 희귀한 선물을 구해다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한 제안이야말로 귀찮은 의붓아들을 떼버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폴리덱
테스는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임무를 맡겼다.
"내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라 주렴."
메두사는 고르곤의 세 자매 중의 하나였다. 고르곤의 자매들은 악어 등가죽으
로 뒤덮인 몸에 뱀의 머리들이 불쑥 솟아난 아주 흉측한 괴물들이었다. 그들
의 모습은 너무도 끔찍해서 누구든 그 얼굴을 보면 즉시 돌로 변해버렸다. 고
르곤의 세 자매 중 둘은 불사신이었고, 셋째인 메두사는 원래 불사신은 아니었
지만 딱딱한 등껍질과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으로 가히 천하무적에 다
름없었다. 술이 깬 페르세우스는 경솔히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메두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아무 탈없이 메두사에게 다가가 그것을
죽일 방법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페르세우스
의 부친인 제우스가 궁지에 빠진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이자 특사인 헤르메스에게 페르세우스를 찾아가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페
르세우스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고뇌에 잠긴 표정으로 정처 없이 들판
을 방황하고 있을 때, 젊은 양치기로 변장한 헤르메스가 나타났다.
"뭔가 고민이 있나 보군요. 내가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도울 수 없을 거
요. 난 지금 메두사를 찾고있는 중이지만, 그게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소."
"나도 그건 몰라요. 하지만 그걸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알아요.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한참을 가면, 온통 잿빛인 지역이 나타나죠. 그곳에 그라이아이라는
세 자매가 살고 있어요. 그녀들은 셋이서 눈 하나만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번갈
아 가며 그 눈을 사용한답니다. 그 여자들은 고르곤의 세 자매에 견줄 만한
추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건 자기들뿐이라는 걸 자랑으로 삼고 있지요. 그래서
두 집안의 자매들은 해 마다 이 집 저 집 옮겨가며 추녀 경연 대회까지 열고
있답니다. 그러니 분명 고르곤의 집이 어디인지 알려줄 거요. 하지만 그녀들의
유일한 눈을 빼앗겠다고 협박해야만 말을 해줄 거요. 원한다면 내가 그라이아
이의 집까지는 데려다 주리다."그리하여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긴 여행 끝에 혜
르메스와 페르세우스는 그라이아이의 집에 당도했다.
"자, 이젠 자네 혼자 해보게나."
라고 말하고는 헤르메스는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잿빛 하늘 아래, 잿빛 풍경 폭
에서 잿빛 옷을 입고 웅크리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세 자매는
말소리조차 잿빛처럼 들렸다. 그러다가 아주 규칙적인 간격으로 그녀 중 한 명
이 이마에 붙은 외눈을 떼내어 옆 사람에게 건네주곤 했다.
페르세우스는 나무 뒤에 숨 어 잠시 그 과정을 관찰했다. 그리고는 한 여자가
눈을 떼어 옆 사람에 게 전해주려는 순간에 갑자기 튀어나와 눈을 가로채고는
위협했다.
"고르곤 자매의 집이 어디인지 말해주면 너희들에게 눈을 돌려주겠다." 그라
이아이 자매들은 하는 수 없이 그가 요구한 정보를 주어야 했다. 눈을 돌려주기
에 앞서 페르세우스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고르곤 자매들 중에서 메두사가 누구인지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지?"
"그거야 쉽지요. 메두사의 머리에 있는 뱀들은 독사들이에요. 한데 다른 두
자매들의 머리에 있는 건 독 없는 보통 뱀이고요. 알겠지만, 독사들은 머리꼴
이 삼각형이고 일반 뱀들은 타원형이죠."
"하지만 고르곤 자매들을 한번 쳐다만 봐도 돌로 굳어버린다는데 어떻게 그
머리 모양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겠어?"
라고 페르세우스가 재차 물어보자, "그거야 당신 일이죠."라고 대꾸했다.
페르세우스는 극심한 당혹감에 빠져 길을 떠났다. 또 한 번 제우스 가 도와주
어야 했다. 그는 아테나를 불러들여 페르세우스를 돕기 위한 구상을 좀 해보
라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아테나는 곧 묘안을 발견했다. 묘안의 실행을
위해서는 몇 가지 소품들이 필요했고 아테나는 올림포스의 신들에게서 그 품
목들을 얻어냈다. 얼마 후 페르세우스가 고르곤의 소굴에 다가서고 있을 때
아테나가 그 앞에 나타났다. 아테나는 애써 변장하지 않았다.
"나는 아테나인데 네가 메두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 해 왔다.
이것은 헤르메스가 쾌히 빌려준 작은 날개인데, 이걸 달면 넌 날 수 있다. 그리
고 하데스의 투구를 쓰면 넌 보이지 않게 된다. 또 아레스의 검으로는 제아무
리 두꺼운 껍질도 꿰뚫을 수 있지. 헤라의 손가방은 집어넣는 물건 크기대로
형태가 만들어지는 특성이 있단다. 마지막으로 거울처럼 빛나는 내 청동 방패
를 이용하면 고른곤 자매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도 그녀들과 싸울 수 있
을 거다."
페르세우스는 헤르메스의 날개를 달고, 하데스의 투구를 쓰고 공중으로 날았다.
그는 고른곤 자매들을 등뒤로 하여 자리를 잡았고. 세 자매의 모습이 선명히 비
치는 방패의 도움으로 정교한 작업을 펼 수 있었다. 그녀들에게는 자신의 모습
을 보이지 않은 채로 아테나의 방패를 이용하여 침착하게 메두사를 찾아냈다.
그런 다음 아레스의 검을 메두사의 등에 꽂아 머리를 베어내고는 헤라의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모습인 채로 어머니와 폴리덱
테스가 있는 섬을 향해 날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페르세우스는 메두사 머리의
초자연적인 힘을 입증 할 기회를 여러 번 갖게 되었다. 한번은 거대한 뱀이
바위에 묶인 안드로메다라는 처녀를 삼켜버리려는 것을 보고 뱀을 돌로 변하게
하여 그녀를 구해주고는 자기 아내로 삼았다. 또 한 번은 어떤 잘못된 연회에
참석하여 백여 명의 참석자들이 그를 박살내려고 한꺼번에 공격하는 바람에,
급히 가방을 열어 메두사를 꺼내었고 순식간에 연회장을 돌무지로 만들어버렸
다. 마침내 섬에 돌아온 그는 폴리덱테스에게 헤라의 가방을 열어 선물을 가져
가라고 유인함으로써 그를 돌로 변하게 했다. 일을 마친 페르세우스는 아테나
에게 모든 물건들을 되돌려주었다. 게다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선물했다. 그녀 역시 언젠가 메두사의 희생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
려움이 있었기에, 메두사가 처치된 것에 대해 몹시 만족해했고 이후로 그 무
서운 전리품을 자기 방패에 늘 붙이고 다녔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는 많
은 자손을 낳아 오래 살았다. 그 자 손들 중의 하나가 알크메네의 아버지, 즉
헤라클레스의 할아버지이다. 네스토르가 아주 자세하게 얘기한 페르세우스의 전
설은 그리스 왕들의 저녁나절을 한 달 이상이나 채워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네스
토르 의 얘기를 지루해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얘기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이야기를 요구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벨
레로폰과 페가소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