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내가 세네살 먹었을 때 사촌형제들과 함께 모여 살았었는데 그중에 제일 큰 오빠는 중학교에 다녔다. 까만 교복과 모자를 쓰고 다녔다. 큰 오빠는 제일 어린 나에게 재미있게 놀아주면서 골려주기도 했다. 꿀벌의 꿀을 먹으면 진짜 맛있다고 하면서 꿀벌을 잡아서 날개를 떼고는 침이 달린 궁뎅이를 내 입술쪽으로 내밀면서 빨아보라고 맛있다고 꿀이 얼마나 달다고 하면서 어서 빨으라고 해서 내 입술이 한접시 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오늘도 재미있게 인형과 놀아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풀도 나무도 말을 한다고 하였다.
정말? 했더니 그러엄...하면서 너 풀들이 이야기 하는거 한 번도 못들어 봤어? 한다. 나는 못들어봤는데... 풀도 이야기를 해? 입이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말해?하니 풀도 살아있잖아. 그러니까 풀도 당연히 이야기를 하지.죽은 풀은 말 못해. 오빠는 풀이랑 맨날 이야기를 해. 너도 살아있으니까 오빠랑 이야기 하잖아. 걔네들이라고 말못하겠냐? 정말? 그렇다니까.
오빠는 한사코 자기는 맨날 풀들하고 밥먹었니 잘잤니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풀도 재미있게 오빠랑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며 웃었다. 정말 풀도 살아있으니까 이야기를 한다는 오빠의 말은 맞는 말 같았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풀들과 이야기할 때까지 말을 붙여보라고 오빠는 말했다. 근데 오빠 . 풀들은 나하고 아무 말도 안해.한 번도 못 들어봤어.
. 그러니까 풀한테 가서 나한테 말해봐 말해봐 하면서 말을 시키는거야. 그럼 걔네들이 결국 너한테 말을 할거야. 알았지? 꼭해 응?
나는 알았다고 하면서 오빠가 데려다준 화분앞에 서서 풀에게 말을 시켰다. 그것은 시장에서 사온 파 한 뿌리였다. 오빠는 더해봐 하면서 웃으며 다른데로 갔다. 나는 그 화분과 이야기하다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풀인 담쟁이덩쿨로 갔다. 기왕에 말을 붙일거면 내가 좋아하는 풀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 담쟁이 덩쿨은 매우 큰 것으로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동네 담벼락 전체를 둘러싼 아주 큰 것이었다. 봄에 나오는 그들의 작은 새싹은 어찌나 이쁜지 나는 그 담쟁이 덩쿨의 잎과 손가락같이 생긴 작은 덩굴손과 꽃이 떨어지는 초록색 점점을 보면 너무 이쁘고 황홀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세상에 이렇게 이쁜 것도 있구나..이러면서 황홀해 했다.
나는 풀과 대화한다는 오빠의 말을 믿고, 단한 번이라도 담쟁이가 나에게 말을 걸 때까지 담쟁이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담쟁아 담쟁아. 너가 말을 한다는데 나는 그동안 니 말을 못들었어. 그러니까 오빠한테 말고 나한테도 말을 걸어줘. 나는 그렇게 담쟁이에게 말하고 거기 서서 담쟁이가 나에게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담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삼십분정도동안 나는 아무 말 없이 담쟁이 옆에서 서서 그가 말하길 기다렸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담쟁아 담쟁아. 너가 말을 한다는데 나는 그동안 니 말을 못들었어. 그러니까 오빠한테 말고 나한테도 말을 걸어줘.
그리고는 다시 조용히 그애가 말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담쟁이의 목소리가 사람처럼 입이 없으니까 아주 작게 말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못들을까봐 아주 주의를 하면서 나는 바짝 깨어있으면서 담쟁이의 말을 들으려고 온 촉각을 곤두세우며 들었다. 하지만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갔다. 놀러갔던 오빠가. 와서는 내꼴을 보더니 너 아직도 풀하고 이야기 못했니? 한다. 그래서 응. 했더니. 더해봐. 하였다. 그러면서 웃고 지나갔다.
나는 뭔가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풀하고 이야기 하고 싶어서 계속 서서 풀에게 말을 한마디 붙이고는 몇시간을 그냥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풀에게 말을 걸려는 아주 짧은 순간에 하필 풀이 나한테 말을 걸 수가 있었다. 둘이 서로 떠들면 안된다. 풀은 말이 별로 없으니까 나는 고만 말을 걸고 풀의 말을 듣기만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담쟁아. 내가 너한테 말을 걸때 하필 그 때 니가 말하면 내가 못들으니까 내가 너한테 말을 안걸께. 그러니까 나한테 꼭 말을 해줘. 하면서 계속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하지만 풀은 아무 말도 안했다. 엄마가 저녁밥 먹으라고 부르셨다. 나는 풀에게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에와서 잤다. 그 다음날 나는 다시 그 자리로 갔다. 똑같이 말했다. 담쟁아 . 오늘은 나에게 꼭 말을 해줘. 나는 니 말을 듣고 싶어. 오빠한테만 말하지 말고 나한테도 꼭 말해줘. 내가 말할때 동시에 네가 말하면 내가 네 말을 못들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듣기만 할께. 그러니까 하루중 아무때라도 나한테 꼭 말을 해 알았지?"
그렇게 하고는 하루 종일 조용히 앉아서 담쟁이 말을 듣기만 했다. 참 무료했다.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꼭 풀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딴 생각을 하면 안된다. 다른 것을 봐도 안된다 그때 담쟁이가 말을 아주 작게 하는데 못들으면 어쩔것인가.
오빠가 오후에 날 보더니 쟤 정말 미련해. 하면서 너 오늘은 꼭 풀하고 이야기 해야 한다. 알았지? 한다. 나는 오빠보고 시끄럽다고 하였다. 담쟁이말 안들리니까 조용히 하라고 부탁을 했다.오빠는 곧 갔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담쟁이를 보면서 담쟁이가 언제 말걸지도 모르는데 듣기만 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날도 허탕을 쳤다. 나는 그 다음날도 갔다. 그렇게 날마다 가서 서있었다. 일주일쯤 되었을때 오빠는 너 아직도 풀하고 이야기하려고 애쓰냐? 너 바보니? 한다. 자기가 시켜놓고 시키는 대로 하는 나 보고 바보라고 하다니...
나는 오빠랑 말하는 시간도 아까왔다. 그 때 담쟁이가 말을 걸 수도 있으니까. 떠드느라고 못들으면 그동안 고생한 게 허탕되지 않는가.
나는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담쟁이에게 갔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아침밥 먹으면 담쟁이에게 가서 담쟁이가 말을 나에게 걸 때까지 아침에 가서 인사하고 나한테 말걸라고 말한 다음에 하루 종일 옆에서 담쟁이가 말거는 걸 기다리며 듣기만 하는 것이다.
엄마가 불러서 점심밥 먹으러 갈 때도 시간이 아까왔다 그 때 담쟁이가 말을 걸면 어쩌는가. 그동안 노력한 시간이 아깝게 되는 것 아닌가.
얼른 먹고와서 나 왔다고 말하고는 다시 담쟁이를 보면서 담쟁이의 말을 들으려고 조용히 있었다.
한번 마음 먹었으니 꼭 해내고 싶은게 내 마음이었다. 나는 그게 언제든 담쟁이가 말을 나에게 걸 때까지 해볼 참이었다.
갑자기 나에게 옥수수가 왔다. 마을 사람들이 옥수수를 잔뜩 쪄서 골목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나보다. 옥수수를 먹으며 담쟁이를 보고 있는데 옥수수 씹는 소리 때문에 담쟁이의 말이 들리지 않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옥수수를 먹다 말았다. 입안에 들어있던 옥수수낱알도 다 뱉어 내었다. 침삼키는 소리 때문에 혹시라도 있을 담쟁이의 작은 말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목에 걸린 낱알 때문에 기침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기침을 하는 사이에 동시에 담쟁이가 아주 작은 소리로 "아" 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기침도 할 수가 없었다. 꾹 참고 하루 종일 집중해서 들었다. 하루는 참 길고도 짧았다.
둔순아. 너 또 담쟁이한테 가니? 맞지? 맞지? 오빠들이 놀렸다.
(자기가 시켜놓고 그대로 한다고 놀리기까지..이게 뭐지?) 아니야 나 담쟁이랑 말걸려고 가는거 아니야. 그냥 담쟁이가 좋아서 가. 그러니까 오빠는 신경쓰지 마.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계속해서 갔다. 나는 아팠다. 지독한 열병을 앓아서 며칠을 앓았다. 그리곤 며칠만에 일어나서 담쟁이에게 다시 갔다. 나 며칠동안 못왔어. 오늘은 왔으니까 나한테 말걸어줘. 하면서 하루 종일 담쟁이를 쳐다보고 담쟁이가 곧 나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하루 종일 집중해서 조용히 들었다.
오빠는 이제 날 걱정하였다. 날 보고 사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오빠가 너 골려주려고 그런거라고. 사실은 풀들이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오빠도 못듣는다고 . 풀은 입이 없어서 말 못한다고. 그러니까 너 이제 다 잊고 편안히 놀라고 거기가서 서있지 말라고 하였다. 너 밤에 아프다고 너네 엄마한테 혼났다고 하면서. 오빠보고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나는 담쟁이앞에 다시 가서 있었다.
나는 담쟁이를 하루 종일 쳐다보고 고요히 들으면서 내 파장을 담쟁이의 파장과 점점 맞추게 된 것이었다. 나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내가 떠들지 않고 고요히 있으면 언젠가 담쟁이는 나한테 말을 걸 것이다.라고. 하지만 담쟁이는 여태 단 한마디도 ,기침도 ",아" 나 "억"소리조차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짜를 세진 않았지만 삼주일은 족히 넘었다.
나는 기한이 없이 담쟁이가 나한테 말을 걸때까지 듣기로 결심했던 참이었다. 나는 어려서 아무 할 일도 없으니까 궁금한 것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제일 재미있는 일이다.
너 지금도 풀이랑 이야기 하니 ? 하고 물으면 아니에요. 나는 그냥 혼자 놀아요 하였다. 뙤약볕에서 너무 힘들면 버려진 판떼기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담쟁이가 말을 걸기를 기다리며 가끔씩 (하루에 한번 혹은 두세번) 담쟁이에게 말을 걸면서 계속 듣기만 했다. 참 힘들었다.
어느날 엄마가 오셨다. 나를 보고 야단을 하신다. 왜 이렇게 더운날 이렇게 두꺼운 옷을 입었느냐고 이 옷이 푹 다 젖었는데도 가만히 있느냐고 목욕하자고 하신다. 나는 하나도 안덥다고 엄마보고 빨랑 가라고 하였다. 정말 안더웠다. 옷이 완전히 젖은 것도 몰랐다. 나는 나를 잊었다. 젖은 옷을 보는 틈도 낭비할 수가 없어 한 순간도 눈을 담쟁이로부터 뗄 수가 없었다. 강제로 데려가려 해서 발버둥을 치자 그냥 놓고 가셨다. 조금있다 엄마가 또왔다. 내 옷을 다 벗기는데 옷이 젖어서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아주 얇은 난닝구 (런닝)같은 옷을 입히셨다. 갑자기 바람이 통하면서 몸이 시원해졌다.
그 날 하루 종일 무덥더니 오후 늦게 저녁무렵에 갑자기 비가 왔다. 바람이 불었다. 그 순간이었다. 나와 담쟁이 사이의 마음의 벽이 물밀듯 한 순간에 허물어졌다. 내 마음과 담쟁이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비가 후두둑 후두둑 내리는데 담쟁이가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불어서 담쟁이 잎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담쟁이가 분명히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는 것과 담쟁이가 스스로 춤을 추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그 때 담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너무 좋아..."
나는 담쟁이의 행복을 똑같이 느꼈다. 그것은 사람이 느끼는 어떤 행복보다도 컸다.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쏟아지는 폭포같은 행복이었다. 나는 여태 태어나서 그렇게 강한 행복이있는줄 몰랐다. 담쟁이로부터 그 엄청난 행복을 배웠다.
나는 담쟁이와 똑같은 행복을 같이 공유하면서 그 엄청난 행복을 누렸다. ... 담쟁아 한마디만 나한테 해줘. 그것은 입이 필요없는 말이었다. 서로 느낌을 똑같이 공유하는 말.
담쟁이는 나에게 말을 했다. 너 그동안 시끄럽고 귀찮아서 혼났다. 왜그렇게 인간은 말이 많어. 그냥 있어. 얼마나 좋니? 아...너무 좋아... 그러면서 담쟁이는 온 몸과 줄기와 잎으로 바람과 비를 즐겼다.
춤을 추면서 환희하는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담쟁이는 가로로 부는 바람 세로로 부는 바람 위에서 부는 바람 빙돌아 몰아치는 바람들을 하나 하나 모두 생생하게 몸으로 느끼면서 완전히 몰입해서 즐기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너무나 행복해 했다.
나는 그런데 비를 맞으니까 추웠다. 벌벌떨렸다. 바람까지 맞으니까 참기 힘들만큼 추웠다. 하지만 지금 드디어 담쟁이랑 대화가 되었기 때문에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벌벌 떨면서 담쟁이에게 넌 춥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담쟁이는 춥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세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즐기면서 환희속에 빠졌다. 내가 묻는 말에는 아예 대답할 마음이 없이 비와 바람을 즐기면서 행복속에 머물렀다.
나는 담쟁이가 비와 바람속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는 모습을 보고서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쳐가는 것을 저들이 저렇게 행복해 하고 즐긴다는데 놀랐다.
비는 더오고 바람이 불어 추워서 더는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자서 행복하게 잘 노는 담쟁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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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와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은 참 추웠다.
덜덜 떨며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버지가 일찍 오셔서 밥상을 받고 계셨다. 참으로 초라한 사람의 삶이여...
우리 집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의 기쁨을 동네 잔치날 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합쳐봤자. 오늘 담쟁이 하나가 느끼고 누린 잠시의 행복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여태 담쟁이는 담벼락에 붙어사는 별볼일 없는 그저그런 심심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나는 ,담쟁이는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방 삼아 사는 대 자유를 만끽하면서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에서 행복을 온 몸으로 누리는 삶을 사는데 비해
사람은 작은 지붕아래로 들어가 살면서 별다른 기쁨도 행복도 없이 그날 그날 하루를 보내며 내일 일 오늘일 걱정을 많이 하며 참으로 옹색하게 산다는 것을 느꼈다.
비유하자면 담쟁이는 대왕의 삶을 사람은 초라한 거지의 삶을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러면서도 담쟁이의 삶과 마음과 행복도 모르면서 담쟁이를 무시하지 않는가.. 마구 꺾고 마구 잡아당기면서 담쟁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도 않는다. 담쟁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다음날 담쟁이를 찾아갔다. 나는 담쟁이에게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행복할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정말 궁금하다고 가르쳐달라고 애원했다. 내가 그걸 배워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많이 행복해지고 그러면 너를 뜯는 사람도 애들도 많이 줄 것이라고...
담쟁이는 아무 말도 안했다.
너는 고통이 없느냐고 물었다.
역시 담쟁이는 아무 말도 안했다.
내가 전에 너의 이파리를 뜯었을 때 어땠어?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이 뜯는데... 아프거나 힘들지 않았어? 원망하는 마음 없었어?
담쟁이는 역시 아무 말도 안했다.
기다리다 지쳐간다. 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움직일 수가 있어. 내가 너의 어린 이파리들을 죄 다 뜯어놓을 수가 있어. 나는 나쁘지만 너를 해롭게 하는거지만. 어제는 말해놓고 지금처럼 시침 뚝떼고서 암 말도 안하면 말이야 내가 뜯어놓을테야.
참으로 교만한 나. 담쟁이를 협박하고 있다. 담쟁이의 입을 열려고 비열한 짓을 했다.
심장이 어찌나 뛰는지... 니가 감히 내 말을 무시해..이런 심정이었다...차마 뜯을 수가 없어서..손이 왔다갔다.. 결국 5센티 정도의 길이로 나는 오래 기다리다가 담쟁이의 줄기와 이파리를 뜯어버렷다. 담쟁이는 아주 짧은 순간 악- 하고는 짧은 체념. 그리곤 고만이었다. 다시 평화.
나는 다시 뜯었다. 이번엔 큰 맘먹고 좀 더 길게 10센티정도 뜯었다. 반응은 똑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지? 이해할 수가 없어. (아이들은 한대만 친구에게 맞아도 울고 불며 엄마한테 가서 이르고 아픔과 상처는 이미 다 나았는데도 대판 싸우고 그 싸움이 더 커져서 일주일동안 말 안하기도 한다. 심지어 애들때문에 어른들도 싸운다. 그것에 비해 너는 완전 바보같애.)
담쟁이는 말했다. "할 수 없지." " 그건 내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일." "원망해서 무엇하는가.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또 나는 뿌리가 튼튼해서 괜찮아." "뿌리가 뭔데?" "너는 지금 키가 작아서 안보이는데 이파리속에 파묻힌 줄기 밑으로 땅 속에 깊숙히 들어있어. 그게 튼튼하면 새싹은 금방 만들어. 또 나는 나이가 많아. 뿌리가 이땅 전반에 퍼져있어.
슬퍼하면 오히려 점점 더 슬퍼져. 일어난 일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지금 이 상태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이미 일어난 일로 비탄에 빠져 슬퍼하는 것보다 낫다.
어차피 이미 일어난 일을 바꾸지도 못하지 않는가. 그 시간에 햇빛을 즐기고 바람을 즐기는게 낫지 않니?
작은 행복은 금방 큰 행복이 되고 되새기지 않는 비탄(깊은 슬픔)은 사라진다.
온 몸이 거의다 파이고 잘리고 뽑히는 매우 심각한 고통을 겪었을 때.... 아무리 작더라도 행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가꾸고 키울 뿐이야. 그게 바람 한 점이라 할지라도 ..."
이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나는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먹먹해서 ......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힘들고 힘겹고 죽을 고생을 다 넘기면서 얻은 지혜인가..
나는 담쟁이의 말을 듣고 내가 태어나서 들은 어떤 사람의 말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담쟁이보고 넌 나이가 많냐고 물었다. 응 많아 너보다 훨씬.
그래 그럼 오빠라고 불러줄까. 언니라고 불러줄까.
담쟁이는 할아버지할머니 혹은 할머니할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복잡하니까 그냥 할아버지라고만 할께. 담쟁아 너는 할아버지지만 내 친구야. 담번에 말걸면 대답해줘. 고마워. 잘 가르쳐줘서. 내가 니 팔 뜯은거 미안해. 하지만 너는 정말 이뻐. 너를 보면 정말 행복해.
"그래."
담쟁이는 다시 고요속에 빠져들었다.
나는 담쟁이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뿌리? 담쟁이가 벽에 붙어사는건데 땅 속에도 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땅 속에 전부 다 퍼져있다고 하니...믿기가 어려웠다. 어쨋든 담쟁이는 참 크기도 하다. 땅속도 땅 위 담벼락도 모두 담쟁이가 퍼져있으니...
담쟁이는 이렇게 나의 친구이자 스승님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담쟁이를 뜯으면 나는 가서 막으며 말리고는 했다.
담쟁이가 아프고 싫어하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러면 안하는 애들도 있지만. 그런 애는 소수고 오히려 더 많이 뜯고 완전히 한쪽 면을 박살내는 애도 있었다. 이까짓게 뭔데...그러면서..
나는 담쟁이에게 정말 미안햇다. 너를 위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서 정말 미안해....
"괜찮아. "
많이 아팠지...다 뜯어져서 어떡하냐....
"괜찮아.
내 일에 참견하지 말고 그냥 둬."
알았어.
나는 무력했다. 북북 뜯기는 고통속에서 담쟁이는 담담하게 고통에 직면하면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면 사띠를 하면서 위빠사나를 하는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 북북뜯기는 담쟁이를 보면서 뜯는 이를 어떻게도 말리지 못하고 친구의 고통을 보는 것은 사무치는 고통이었다.
다음 번에 가서는 뜯는 애를 보고... 이거 보다 더 좋은 놀이감이 있다고 저쪽에서 애들이 공놀이 한다고 그런 꾀를 썼다.
아이들은 담쟁이를 뜯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
담쟁이는 미소를 지었다.
담쟁아. 내가 처음으로 널 도운 것 같애. 이상하게 도와야지만 널 도울 수가 있구나. 그냥 도우면 오히려 어긋나기만 하니.. 돕는게 간단해보이는데도 쉬운게 아냐.
맞아.
담쟁이는 나보고 너도 나이를 먹어간다고 하였다.
담쟁이는 그 후론 내가 놀고 있을 때 가끔 구조신호를 보냈다. 그럴 때 가보면 아이들이 담쟁이를 쥐어뜯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그린 인형이나 공주 혹은 딱지 같은거 모은 껌종이같은거를 보여주면서 신경을 다른 데로 팔게 해서 담쟁이를 구했다. 아이들은 쉽게 담쟁이로부터 관심을 돌렸다.
담쟁이와 나는 내가 그곳에서 이사하는 날까지 친구가 되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또 담쟁이가 주는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여섯살 여름에 그곳에서 떠나 이사를 갔다.
할어버지담쟁아. 나 이제 가. 너 보고 싶을거야.
그러니? 잘가. 난 널 바로 잊을거야. 너도 날 잊어.
싫어.
넌 아직 어리구나. 너 좋을 대로 해. 기억때문에 지금을 놓치면 너만 힘들 뿐이야.
할아버지 담쟁아. 나 간다. 참 무정도 하다고 생각했다.너에겐 오직 지금 여기만이 있구나. 그래 역시 넌 현명해.
담쟁이는 대답대신 다시 평화로움을 만들면서 나를 잊고 행복속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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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보기- 태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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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보기 - 다른 풀들 이야기
글 / 돌아오는 길
출처 / http://cafe357.daum.net/_c21_/bbs_list?grpid=1DPFG&mgrpid=&fldid=Lz2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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