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이야기.

유럽신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별관신사 2015. 2. 28. 01:30

헤라클레스는 열 가지 노역을 8년 1개월만에 모두 완수했다. 그러나 두 번째
와 다섯 번째를 인정하지 않은 에우뤼스테우스는 그에게 두 가지를 더 부과하였
다. 열한번째 노역은 지모신(地母神Mother Earth)이 헤라 여신에게 결혼 선물로

준 황금 사과나무의 열매를 따오는 것이었는데 이 선물에 기뻐한 헤라는 이 사
과나무를 자신의 성스러운 정원에 심었다. 이 정원은 아틀라스산의 비탈에 위
치하고 있는데 그곳은 태양 마차가 여행을 마치고 쉬는 곳이며 각각 천마리인

아틀라스의 양떼와 소떼가 방목되는 곳이다. 어느 날 헤라는 그 나무를 맡긴
아틀라스의 딸들, 즉 헤스페리데스가 사과를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는 항상 감시
하는 용인 라돈Ladon을 나무를 휘어 감게 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b. 라돈은 튀폰과 에키드나의 자식이라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케토와 포르퀴스
의 막내라고 하며 또다른 설에 따르면 지모신이 혼자 힘으로 낳은 자식이라고도
한다. 라돈은 백개의 머리가 달렸는데 각각은 서로 다른 말을 하였다.

c. 헤스페리데스의 거주지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여 휘페르보레오스의 땅(the
Land of the Hyperboreans)에 있는 아틀라스山, 마우렌타니아Maurentania의 아틀
라스山, 오케아노스海너머의 어떤 지역, 혹은 아프리카 변경의 에티오피아의 헤

스페리아이Hesperiae근처에 위치한 '西極(Western Horn)'이라고 불리는 곶(岬) 등
이 제시되고 있다. 비록 사과가 헤라의 것이기는 하지만 아틀라스는 그 황금사
과나무가 있는 정원의 정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테미스가 그에게

"티탄이여. 언젠가 제우스의 아들이 당신의 나무에서 그 황금의 껍질을 벗기게
될 것이에요."라고 경고하자 아직 天球(celestial globe)를 어깨에 짊어지는 벌을
받지 않았었던 아틀라스는 정원 주위에 견고한 벽을 쌓고 자신의 땅에서 이방인

들을 모두 몰아냈다. 아마도 아틀라스가 사과를 지키기 위해 라돈을 데려다 놓
았을 것이다.

d.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일뤼리아
Illyria를 가로질러 예언가인 동시에 海神인 네레우스Nereus의 거처인 포Po江에
이르렀다. 그가 마케도니아의 작은 시냇물인 에케도로스Echedorus를 건널 때

아레스와 퓌레네Pyrene의 아들인 퀴크노스Cycnos는 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아레스는 퀴크노스의 원조자인 것처럼 행동하여 부대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제
우스가 그들 사이에 벼락을 던져 싸움을 못하게 하였다. 마침내 헤라클레스가

포강에 도착하였을 때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들인 포강의 뉨프들이 그에게 네레
우스가 잠들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헤라클레스가 백발노인을 꼭 붙잡고 그
가 아무리 프로테우스처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하여도 절대 놓아주지 않고

는 황금사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이 정보를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e. 네레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그가 직접 사과를 따지 말고 아틀라스를 시켜 따
오도록 하되 아틀라스가 사과를 따러 가는 동안 그 엄청난 짐을 대신 들어주라
고 충고하였다. 그리하여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아틀라

스에게 이러한 수고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아틀라스는 한시간만이라도 짐을
벗을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할 생각이 있었지만 라돈을 무서워했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정원 담에 올라 활을 쏘아 라돈을 죽였다. 그 즉시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를 대신하여 천구를 등에 받쳤고 아틀라스는 성큼 걸어가 자신의 딸들
을 시켜 사과 세 개를 따게 했다. 아틀라스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닫
게 되었다. "만약 네가 하늘을 몇 달만 더 떠받쳐 주면 내가 이 사과를 아무런

실수없이 에우뤼스테우스에게 가져다주마."라고 그는 말했다. 네레우스로부터
이러한 제안을 절대 승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헤라클레스는 동의하는 체 하
며 머리받이를 할 동안만 잠깐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쉽게 속은 아틀라스가 사

과를 땅에 놓고 그 짐을 다시 들자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집어들고 비꼬는 인사
를 하며 멀리 도망쳤다.

f. 수개월 후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에우뤼스테우스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에우뤼
스테우스는 이 사과를 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는 이것을 아테나 여신에게
주었고 그녀는 이것을 다시 뉨프에게 돌려주었다. 왜냐하면 헤라의 소유물이

이리저리 넘겨지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노역을 하고 나서 목이 말랐
던 헤라클레스는 발로 땅을 밟아 샘이 흘러나오게 했는데, 훗날 리뷔아 사막에
서 표류하였던 아르고나우테스들이 이 샘을 마시고 목숨을 건졌다. 한편 라돈

의 죽음을 슬퍼한 헤라는 라돈의 모습을 별자리로 박았는데 이것이 뱀자리(the
constellation of the Serpent)이다.

g. 헤라클레스는 뮈케나이에 곧바로 오지 않았다. 그는 먼저 리뷔아를 횡단하였
는데, 그곳의 왕이며 포세이돈과 지모신의 아들인 안타이오스Antaeus는 이방인
에게 자신과 레슬링을 할 것을 강요하여 그들을 지치게 만든 후 죽이는 버릇이

있었다. 안타이오스는 원래부터 힘이 세고 운동 기술이 능했을 뿐만 아니라 땅
에 닿을 때마다 기운을 되찾았다. 그는 희생자들의 뼈를 포세이돈 신전의 지붕
에 모아두었다. 이러한 야만적인 행위를 끝내기 위해 헤라클레스가 먼저 결투

를 신청했는지 아니면 안타이오스가 먼저 도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안
타이오스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높이 솟아오른 절벽아래의 동굴에 사
는 거인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사자고기를 즐겨 먹었으며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보존하고 더욱 증가시키기 위해 맨땅바닥에서 잠을 잤다. 기간테스를 낳
은 후 아직까지 임신을 할 수 있었던 지모신은 리뷔아의 동굴에서 안타이오스를
임신하였으며 자신이 낳은 괴물들 즉, 튀폰, 티튀오스Tityus, 브리아레오스보다

안타이오스를 더욱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만약 안타이오스가 플
레그라 평원에서 벌어진 기간토마키아에서 올륌포스신들과 대적을 하였다면 아
마 신들은 매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h. 레슬링 시합을 준비하면서 헤라클레스와 안타이오스는 자신들의 사자가죽을
벗어 던졌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올륌포스신들이 그러하듯이 기름을 몸에 바
르는 동안 안타이오스는 발바닥만이 땅에 닿더라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 뜨

거운 모래를 온몸에 퍼부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힘을 아끼고 안타이오스를
지치게 하려고 했으나 땅바닥에 힘껏 그를 던졌을 때 지모신이 생기를 다시 불
어넣어 그 거인의 근육이 부풀고 그의 사지에 홍조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는 놀

랄 수밖에 없었다. 둘은 다시 맞붙었는데 안타이오스는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던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몸을 날렸다. 이를 본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어 그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사지를 부러뜨리고 지모신이 공허

한 신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공중에 들고 있었다.

i. 일설에 의하면 이 결투는 탕헤르Tangier市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바닷가 근처
의 작은 마우레타니아의 도시(Mauretanian City)인 릭소스Lixus市에서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곳에는 안타이오스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

에서 흙 한 통을 퍼다가 다른 곳에 두면 그 흙이 원위치될 때까지 비가 계속해
서 내린다고 그곳 원주민들은 믿고 있다. 세르토리우스Sertorius가 탕헤르를 방
문하였을 때 안타이오스가 전통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거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덤을 팠다. 놀랍게도 그 크기가 60큐빗이었으며 이에 놀란 세르토리우스는
그 즉시 무덤을 덮고 안타이오스를 영웅으로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 탕헤르市
의 건설에 대해서 예전에 팅기스Tingis라고 불리던 이 도시를 안타이오스가 건설

하였다는 지방전설도 있으며 안타이오스의 아내인 팅가Tinga가 헤라클레스에게
낳아준 소팍스Sophax가 이 도시를 다스리면서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도 한다. 소팍스의 아들인 디오도로스Diodorus는 헤라클레스가 아프리카에 남겨

둔 뮈케나이 출신의 이주민중에서 뽑은 그리스 군대를 이끌고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를 정복했다. 마우레타니아人(Mauretanians)은 팔루시이人(the Pharusii)처럼
동방에서 도래했는데 헤라클레스와 함께 아프리카까지 동행한 어떤 페르시아人

의 후손이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그들은 이스라엘人(Israelite) 여호수아Jhosua
에 의해 쫓겨난 가나안人(Canaanites)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j. 다음으로 헤라클레스는 암몬에 있는 신탁소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 제
우스와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자꾸만 고집하자 양의 가죽을 벗겨 그 양털을 뒤집어쓰고

양의 머리로 자신의 머리를 가린 채 아들에게 일련의 지시를 내렸다. 그후 이
집트인들은 양머리를 한 제우스 암몬 신을 모셨다. 테바이인(the Thebans)들은
일년에 한번 제우스축제일의 마지막날에 양 한 마리를 잡아 그 양털로 제우스의

像에 뒤집어씌웠다. 숭배자들은 희생물에 대해 한탄하며 가슴을 친 후에 그것
을 성스러운 무덤에 묻었다.

k. 그후 헤라클레스는 남부지방을 공략하여 100개의 성문이 있는 도시를 건설하
고 자신의 고향을 기념하여 테바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이 도시
의 건설자는 오시리스라고 한다. 이 당시 이집트의 왕은 포세이돈이 에파포스

Epaphus의 딸 뤼시아나사Lysianassa 혹은 닐루스(Nile) 河神의 딸 아니페Anippe
와 정을 통해 낳은 아들이자 안타이오스의 형제인 부시리스Busiris였다. 그런데
언젠가 부시리스의 왕국에 8년 내지 9년간 대기근이 발생해서 부시리스는 그리

스의 점쟁이를 초빙하여 조언을 듣고자 했다. 퓌그말리온의 아들로서 그의 조
카이며 학식 많은 퀴프로스의 예언자 프라시오스Phrasius 혹은 트라시오스
Thrasius 혹은 타시오스Thasius는 제우스에게 해마다 이방인 한 명을 제물로 바

치면 기근이 끝난다고 충고하였다. 부시리스는 프라시오스를 첫 제물로 바쳤으
며 그후 그의 사제들이 헤라클레스를 제단으로 끌고 올 때까지 해마다 이방인
한 명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띠로 묶었고

신을 부르던 부시리스는 제사용 도기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헤라클레스는 오라
를 끊어버리고 부시리스와 그의 아들인 암피다마스Amphidamas 그리고 제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

l. 그후 헤라클레스는 아시아를 횡단한 후 로도스섬의 린도스市의 항구인 테르뮈
드라이Ternydrae에 입항하였다. 그곳에서 헤라클레스는 한 농부의 우마차에서
수소 한 마리의 멍에를 풀고 제물로 바친 후 그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한편

그 소의 주인은 어떤 산에 올라서서 멀리서 그를 저주하였다. 그후에 린도스에
서는 헤라클레스에게 제물을 바칠 때 항상 저주를 퍼붓는 풍습을 생겨났다. 마
지막으로 헤라클레스는 카우카소스山(the Caucasus Mountains)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30년 혹은 1000년 혹은 3만년 동안 묶여 있었고 매일
튀폰과 에키드나의 소생인 독수리(griffon-vulture)가 그의 간을 찢어놓았다. 제우
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형벌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이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에

게 테티스와 결혼하면 그 자신보다 위대한 자식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녀와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
스를 용서해달라고 헤라클레스가 청하자 아무런 반대 없이 승낙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에게 영원한 형벌을 과한다는 의미에서 제우스는 그에게 아직도 죄
수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 동안 그를 카우카소스의 바위에 묶어두었던 사슬로 만
든 반지를 끼도록 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반지이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의 고

통은 그를 대신하여 어떤 불멸자(不滅者)가 자진하여 타르타로스로 가여만 없어
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케이론이 휘드라의 화살
을 맞은 이후 불멸이라는 선물을 반납하고 싶어한다고 얘기하였다. 이로써 방

해되는 모든 것이 사라지자 헤라클레스는 '사냥의 신 아폴론(Hunter Apollon)'에게
기원한 후 화살을 날려 독수리를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풀어주었다.

m. 지금도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반지를 낀다. 그리고
또한 화관(花冠)을 쓰는데 이는 프로메테우스가 해방될 때 버드나무로 만든 화관
을 쓰도록 명령받았으며 헤라클레스 역시 그와의 우정을 과시하기 위해 야생 올
리브로 만든 화관을 썼기 때문이다.

n. 전능한 제우스는 그 화살을 화살좌(the constellation Sagitta)로 만들었다. 그리
고 오늘날까지 카우카소스山의 주민들은 독수리(griffon-vulture)를 인류의 적으로
여겨 프로메테우스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 둥지를 불화살로 쏴서 태우고 덫을
놓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