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이야기

인간의 자율만이 윤리의 근거이다. 칸트.

별관신사 2015. 11. 16. 07:24

운리적인 문제는 타자와의 괸계에 있어서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문제로 표현될 수 있다. 흄은 동정심이 고독한 유아론을 벗어나서 다시 말해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서 행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윤리적인 근거라고 생각

했다.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이익이 생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자의 고통에 대해 함께 아파할 수 있다. 하지만 가령 나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사람이 고통에 빠진다면 과연 우리는 이 경우에도 내면에서 강한

동정심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위험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우리는 동정심을 갖기 힘들 뿐 아니라 심지어 그가 이 위험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은

윤리적으로 선한 상태라고볼 수 있을까? 동정심은 나와 타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윤리적 매개가 될수도 있지만 개인의 변덕 혹은 상황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동정심과 같은 감정의 차원에서 윤리적문제를 논의 하는 것 자체가 항상 이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볼 수 있는데 이점을 가장 예민하게 의식했던 사람이
바로 칸트였다. 칸트는 윤리적 변덕에 노출되어 있는 수동적인 감정 차원이

아니라 감정이 변할 지라도 항상 그 보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도덕적 법칙의
차원에서 다시 정당화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것을 우리가 단지 수동적으로 느낀 어떤 것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너무나 쉽게 도덕적 동기를 감각적 충동인 것으로
받아 들인다.순수한 이성 법칙에 의해서 행위들이 직접 규정된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 본성에 있어서 매우 숭고한 것이며 이렇게 의지를 지성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일을 감성적인 일로 그리고 특수한 감성적 작용
결과로 생각하는 것은 사기이기도 하다.


실천이성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