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간 로마인들.
기원전 54년, 시리아 총독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장군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거둔 성공을 시샘
하며 자기도 대장정에 나서기로 했다.
서쪽으로는 카이사르가 영국까지 세력을 확대한터라.
크리수스는 바다에 닿을 때까지 동방으로 나아갈 작정
이였다. 마침내 그의 군대가 진군을 시작했다.
그런데 파르티아 왕국이 그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 크라수스는
로마의 대군을 지휘하며 그 장애물에 맞섰지만 카레스(하란)
전투에서 파르티아의 총사령관 즉 수레나에게 패배를 당한다.
그 뒤에 크라수스가 살해되면서 로마제국의 동방 정벌은
종국을 맞게 된다. 그런데 크라수스의 이 시도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많은 로마 병사들이 파르티아의 포로가 되었는데
파르티아 인들은 이 포로들을 자기네 군대에 받아들여 쿠샤나
왕국의 군대와 싸우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파르티아 왕국이
패배하여 로마 병사들은 쿠샤나군에 편입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에 쿠샤나 왕국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다시 전투가 벌어지고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나라 저나라 군대로 전전하던 로마의 포로들은 마침내 중국
군대로 가게 되었다. 이 백인들은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인들은 무엇보다 투석기나 노포 같은 포위공격 무기의
제조에 관한 로마인들의 지식에 감탄했다.
중국인들은 로마병사들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음락을 이루어 살게 했다. 로마 병사들은 중국 여인들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 몇년후 로마의 상인들이 중국에
와서 그들에게 고향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
로마 병사들은 중국에 사는게 더 행복하다면서 상인들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