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당신이 어떤 문제에 쏟는 주의력 바로 그것이 문제를 푸는 에너지이다. 당신이
당신의 완전한 주의력을 기울일 때-즉 당신 속의 모든 것을 기울일 때-거기엔 관찰자가 없다.
거기엔 순전한 에너지로서의 주의 상태가 있을 뿐이며, 그 순전한 에너지가 총명의 가장 높은
형태이다. 그런 마음의 상태는 당연히 완전한 침묵일 터이며, 그 침묵, 그 고요-훈련된 고요가
아니라-는 완전한 주의력이 있을 때 찾아 온다. 관찰자도 관찰되는 것도 없는 그 완전 침묵이
종교적 정신의 가장 높은 형태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일어난 일을 말로 나타낼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말로 발설된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 스스로 발견하려면
당신이 그것에 통달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다른 모든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래서 당신이 한 가지 문제-그것이
무엇이든 상관 없다-를 완전히 풀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모든 문제와 쉽게 부딪쳐서
그것들을 풀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물론 심리적 문제들을 말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미 어떤 문제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문제를 불완전하게
만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문제의 본질과 구조를 알고 그것을
완전히 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생겨날 때 그것과 만나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그것이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일 누가 어떤 문제를 안고 한 달이나
하루, 혹은 심지어 몇 분을 견딘다면, 그것은 마음을 일그러지게 한다. 그러면 어떤 문제를 아무
뒤틀림 없이 즉각적으로 만나고, 즉각적으로, 완전히 그것에 대해 자유롭고, 그래서 마음 속에
기억도, 아무 생채기도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기억들이란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이미지들이고 이 이미지들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범상치 않은 것을 만나며 따라서 거기엔
모순과 갈등이 있다. 삶은 아주 현실적인 것이며-삶은 추상이 아니다-당신이 이미지로서
그것을 만날 때 여러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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