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 239

깨달음의 문.

우리들 대부분은 카르마와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우리 자신과 실재의 고유한 본성을 바라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행복과 고통이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꽉 붙들어 미숙하고 무지한 행위를 일삼아 다음 생의 씨앗을 계속 뿌린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통해 세상의 한없는 순환에 삶과 죽음의 끝없는 반복에 얽매이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어떻게 살아 가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가 죽음과 지혜롭게 만날 수 있도록 우리 카르마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또다시 미망에 떨어져 탄생과 죽음이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비극을 피하도록 정말로 시급하게 지금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이 삶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유..

바르도 가르침의 시작인 고대의 족첸 탄트라는.

바르도 가르침의 시작인 고대의 족첸 탄트라는 이미 완전히 자란 모습으로 태어나는 가루다라고 하는 신비로운 새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새의 이미지는 이미 완전무결한 생태의 우리의 원초적인 본성을 상징한다. 가루다의 새끼는 알 속에 있을 때 이미 완전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껍질을 깨고 나오지 전에는 결코 날 수 없다. 단지 껍질이 깨어져 활짝 열려야만 가루다는 하늘 높이 치솟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성의 참모습은 우리 몸으로 가려져 있으며 우리가 이 몸을 버리는 순간 밝게 현현한다고 스승은 우리들에게 말한다. 죽음의 순간이 그렇게 엄청난 기회인 이유는 바로 그때 마음의 근원인 본성 근원적인 광명 또는 밝은 빛이 자연스럽게 방대하고 눈부시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모짜르트의 말.

흥미롭게도 모짜르트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죽음이 인간의 참된 그리고 최상의 친구.... 우리의 참된 행복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밤에 침대에 누울 때마다 아마도 (내가 비록 젊기는 해도) 다음날 내가 죽는다면 내 친지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나를 사귀면서 내가 완고하고 고집이 쌧다고 말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행복감으로 나는 창조주에게 매일 감사를 드리고 온 마음을 다해 내 동반자인 피조물들에게도 같은 염원을 한다. 에밀리 엔더슨.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지난날의 카르마를 비춰준다. 우리가 이를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고통과 어려움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이다. 우리는 그것을 실패나 재난으로 보지않을 것이고 고통을 형벌로 간주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겪고있는 과거 카르마의 결과 진실로 우리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고통을 온갖 부정적인 카르마를 쓸어내는 빗자루라고 말한다. 하나의 카르마가 종결되는 것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좋은 카르마의 결실인 행복은 우리가 잘 이용하지 못하면 곧 지나가 버릴 것이고 나쁜 카르마의 인과응보인 불행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진정시키는 놀라운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다. 카르마는 키베트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생생하고도 실재 적인 의미를 지닌다.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