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그렇다면 그곳이야말로 바로 지성이 나타나는 곳이 아닐까요?

별관신사 2015. 12. 11. 04:32

당신 말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낡은 뇌가 자신은 절대로 자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또 자신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바로 그러한 지각이 지성의 씨앗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지성이 아닙니까? 전적으로 새로운 방향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바로 그런 발견이 지성입니다
그렇다면 지성과 다른 것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지성의 다른 부분은 지성의 이상한

의식일까요? 저는 우리가 지성이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합니다 정신은 언어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낡은 뇌는
지금까지 스스로 신과 자유를 가질 수가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것은 낡은 뇌의 모든
움직임은 여전히 낡은 뇌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지성이란, 낡은
뇌가 단지 알려져 있는 분야 안에서만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발견이 지성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뜻으로 지성을 말합니다
지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논쟁이나 믿음, 의견이나 이성의 산물이 아닙니다
지성은 뇌가 자신의 오류를 발견할 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발견할 때에 비로소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지성과 새로운 차원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다른 차원은 오직 지성을 통해서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성이 없으면 그것은

작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그것은 오직 지성이 기능하고 있는
곳에서만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지성은 낡은 뇌가 활동을 하고 또 어떤 종류의
믿음이나 뇌의 특정 부분에 집착이 있을 때에는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은 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을 믿고 '주는 오직 한 분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이 집단의 일원이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지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낡은 뇌의 한계를 발견할 때, 바로 그러한

발견이 지성이며 오직 그러한 지성이 기능을 하고 있을 때 새로운 차원이 그것을
통해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정지되어 있는 상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