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인간이 그런 것(위에서 말해오고 있는 진리, 리얼리티, 사랑, 은총, 아름다움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어떤 것-역자)을 갖고 있지 못한지 자문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아이를
낳고, 성관계와 유연함을 가지며, 교우, 우애, 동료의식 속에서 어떤 것을 더불어 나누는
특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갖고 있지 못하다-왜 그들은 그것을 갖고 있지 못한가? 당신이
지저분한 거리를 혼자 걷고 있을 때, 버스에 앉아 있을 때, 혹은 휴일에 바닷가를 걷거나
수많은 새, 나무, 시내, 맹수들이 있는 숲속을 걷고 있을 때, 느긋하게 의문을 품어본 일이
있는가-즉 수만년 동안 살아온 인간이 왜 이것을, 이 비상하게도 시들지 않는 꽃을 못얻었는지
물어본 일이 있는가? 왜 그다지 능력 있고, 그렇게 영리하고, 그렇게 교활하고, 그렇게
경쟁적이며, 그렇게 놀라운 과학기술을 갖고 있고, 우주에 가고 땅밑으로 바다 밑으로 가고,
또 비상한 전자두뇌를 만들어낸 인간인 당신이-왜 문제되고 있는 그 한 가지는 얻지
못했는가? 당신의 마음이 왜 공허한가 하는 문제와 당신이 진지하게 부딪쳐 본 일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 질문을 당신 자신에게 물었을 때 당신의 대답은 어떤 것인지-즉 어떤 얼버무림이나
교활함 없는 솔직한 대답은 어떤 것인지? 그 질문을 묻고 그것의 절박함을 문제삼는 데
있어서 당신의 대답은 당신의 강렬함에 따라 나옴직하다. 그러나 당신은 강렬하지도 않고
절박하지도 않은데, 왜냐하면 당신은 에너지, 정열로서의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정열 없이 당신은 아무 진리도 발견할 수 없는데-그 정열이란 그
뒤에 맹렬함을 갖고 있는 정열이요, 아무 숨겨진 바램이 없는 정열이다. 정열은 말하자면
무서운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이 정열을 갖고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이 당신을 어디로 데리고
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포가 그 이유가 아닐까-즉 사랑이라는 성질이 당신 속에 결핍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내기 위한 그 정열의 힘을 당신이 못갖고 있는 이유, 당신의 가슴 속에 그 불꽃이
없는 이유가 공포 아닐까?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마음과 가슴을 아주 면밀히 성찰한다면,
당신은 왜 당신이 그것을 갖고 있지 못한가를 알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걸 갖고 있지
못한 까닭을 찾아내는데 있어서 정열적이라면, 당신은 그게 거기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높은 형태의 정열인 완전한 부정을 통해서만 그것, 즉 사랑은 존재하게 된다. 겸손과 마찬가지로당신은 사랑을 심어 키울 수 없다. 겸손은 자만이 완전히 끝날 때 존재한다-그러면 당신은
겸손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겸손하다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텅빈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삶의 길을 발견하기 위해, 참으로 있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주고 당신의 가슴, 당신의 신경, 당신의 눈, 당신의 전존재를 줄
때, 그리고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완전히, 전적으로 부정할 때-추악한 것과 잔인한 것에
대한 바로 그 거부 속에 그것과 다른 것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가 침묵한다는 걸 아는 사람, 그가 사랑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이며
침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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