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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별관신사 2015. 3. 16. 15:40

원문제목Macbeth

  • 발표연도1605~1606년
  • 원문언어영어
  • 장르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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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
    탁한 대기, 안개 뚫고 날아가자.

    [맥베스]의 1막 1장, 세 마녀들이 퇴장하며 내뱉는 말이다. 첫 문장은 일차적으론 날씨의 맑음과 흐림을 가리킨다. 하지만 보다 넓은 맥락에서는 이 작품 속의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담고 있다. 즉, 아름다움과 추악함, 깨끗함과 더러움, 선함과 악함, 강함과 약함 등 우리가 ‘모순’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온갖 가치의 충돌의 장이 곧 세계이며 인간의 내면이다.


    실제로 [맥베스]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덩컨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왕이지만 그 자신의 고백대로 “사람의 얼굴에서 마음씨를 알아내는 기술은 없”는, 어리석은 인물이다. 맥더프는 훌륭한 장군이지만 무책임하게 가족을 내버림으로써 죽음으로 내몬다. 뱅코 역시 의로운 인물이지만 은연중에 맥베스의 행운을 질투하며 어두운 욕망을 키운다. 말하자면 다들 적절히 이중적이다. [맥베스]의 상황 역시 인간의 이런 본성이 극도로 발현될 수 있도록 설정돼 있다. 중세 스코틀랜드의 왕권 다툼, 간단히, 정치 말이다. 물론, 이것이 맥베스의 거듭된 악행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이 인물이 극악한 죄인이면서 동시에 고귀한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맥베스는 그 자체가 모순의 극단이다. 덩컨 왕의 충신이자 명장으로서 반역을 성공리에 진압했던 그가 도리어 갑자기 반역자로 바뀐다. 여기에 구태여 무슨 이유가 있을까. 마녀들의 선동도 직접적인 자극에 가깝지,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코더의 영주가 된 그가 국왕의 자리를 노리는 것도 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욕망이란, 특히 “검고 깊은 욕망”이란 그 속성상 모순덩어리에 염치없는 대식가이기 때문이다.

    “(방백) 컴벌랜드 왕자라!―내 길을 막았으니
    이건 내가 걸려 넘어지든지 아니면
    넘어야 할 계단이다. 별들이여 숨어라!
    빛이여, 검고 깊은 내 욕망을 보지 마라.
    눈은 손을 못 본 척하지만 끝났을 때
    눈이 보기 두려워할 그 일은 일어나라.”

    하지만 욕망이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은 두껍다. 맥베스에게 그 벽이란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별들”, 즉 도덕률이다. 맥베스 부인이 그에게 살인을 부추길 때 사용하는 무기도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우유부단함을 질책하며 남성의 최고 가치인 용기를 들먹인다. “욕망”은 있으되 “행동력과 용맹심”이 없는 자는 “비겁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윽박지른다. 결국 맥베스로 하여금 처음 칼을 들게 만드는 것은 왕위 찬탈의 야망이라기보다는 비겁자가 되고 싶지 않은 자존감이다. 이로써 ‘아비’와 다름없는 왕을 죽이는, 이 크나큰 죄악이 용기라는 최고의 덕목에 의해 장려되는, 적어도 양해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테오도르 샤세리오 [뱅코의 망령을 보는 맥베스] 1854, 캔버스에 유채, 54x65cm, 랭스미술관, 프랑스.

     

     

    3막에 이르면 맥베스는 이른바 ‘피의 권좌’에 앉아, 피는 피를 부른다는 공식을 그대로 실천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맥베스가 악행을 저지르는 장면을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 주지는 않는다. 관객이 보는 맥베스는 잔혹한 살인마가 아니라 타인의 피로 인해, 동시에 제멋대로 뻗어 가는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는 숭고한 인물이다. 그의 고뇌는 실상, 단순한 도덕과 윤리 이상의 것을 말해 준다. 즉, 죄의식은 절대 죄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크기에, 윤리 의식의 크기에 비례한다. “아멘”을 외치고 싶은 마음과 피 묻은 손을 씻고 싶은 마음이 역설적으로 죄를 만드는 셈이다. 여기서 이미 실현된 욕망(죄)과 새로 생성된 욕망(속죄) 간의 긴장이 발생한다. 최후의 심판은 맥베스의 내부에 자리 잡은 법정, 말하자면 ‘내 안의 법정’에서 행해진다. 죄의 주체가 벌의 주체이자 객체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맥베스가 정녕 비극의 주인공이자 명실상부한 영웅일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스스로 운명에 도전장을 던진 만큼, 몰락을 코앞에 두고 자살을 하는 것도 비겁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왜 얼간이 로마인 행세를 하면서
    내 칼로 죽어야 해? 산 놈들이 보이는 한
    멋지게 베어주자.”

    이렇게 맥베스는 불면과 환영의 고통을 고스란히 껴안은 채 끝까지 자기 자신과 맞선다.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맥더프의 칼이었으나, 이러한 최후야말로 맥베스 스스로 선택한 자기 응징의 방식이었으리라.


    그렇다면 그의 죄는 대체 무엇인가? 어두운 욕망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 무모함? 마녀들의 예언을, 즉 자기 안의 속삭임을 맹목적으로 믿은 어리석음? 실현된 욕망을 견뎌내지 못한 나약함? 혹은 세속 권력의 쟁취에 덧붙여 도덕적인 완성까지 거머쥐려 했던 탐욕스러움? 아마 전부 다일 것이다. 다만, 그것은 각각 정반대되는 긍정적인 가치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실로 아름다운 것은 추악하고 깨끗한 것은 더럽다. 물론, 그 역도 참이다. 그러나 이 보편적인 모순이 곧 인간의 본질이며 그 흐름이 곧 인생이다. 말하자면, 드넓은 연극 무대에서 한껏 설치다가 덧없이 꺼져 가는 촛불!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

     

     

    세 마녀가 개선(凱旋)하는 맥베스와 뱅코 장군에게 예언을 한다. 예언의 내용은 머지않아 맥베스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르리라는 것과, 뱅코의 자손이 왕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에 맥베스는 크게 동요하고, 욕심이 많은 아내와 손을 잡고 일을 도모한다. 마침내 덩컨 왕이 그의 성을 방문한 날 밤에 피살되고 두 왕자는 국외로 탈출한다. 맥베스는 도망친 왕자들에게 혐의가 돌아가게끔 흉계를 꾸며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마녀들의 예언을 함께 들었던 뱅코를 없애기 위해 자객을 보내지만, 뱅코만 살해되고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얼마 후 새 왕 맥베스의 연회석상에 뱅코의 망령이 나타나 그를 괴롭히고, 맥베스는 계속 뱅코의 망령에 시달린다. 그는 귀족들까지 자신을 의심하자 마녀들을 찾아가 다시 예언을 내려줄 것을 청한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여자의 배에서 태어난 자는 그를 해치지 못하며 버남의 숲이 성에 닥쳐오지 않는 한 그는 안전하다고 예언한다. 그러나 적장 맥더프가 버남 숲의 나무를 쳐들고 성에 이른다. 게다가 맥더프가 어머니의 자궁을 절개하고 태어난 것을 알고 용장 맥베스도 무너지고 만다. 결국 덩컨 왕의 아들 맬컴이 왕좌에 오르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셰익스피어는 1564년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비교적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런던에서 극작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1616년 고향에서 사망하기까지 서른일곱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희곡들은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세계 문학의 고전’인 동시에 현대성이 풍부한 작품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는 ‘세계 문학의 절정’이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쓰인 [맥베스]는 정치적 욕망과 왕위 찬탈을 다루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양심과 영혼의 붕괴를 보다 중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맥베스는 악인이면서도 공포뿐만 아니라 공감을 자아내어 독자로 하여금 인간성의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김연경

    1975년 거창 출생.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계간 <문학과 사회>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이래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내 아내의 모든 것], [고양이의 이중생활] 등의 소설집 및 장편 소설을 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지하로부터의 수기], [악령]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