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중간계.

별관신사 2013. 6. 22. 06:59

여덟째 날]

이제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이다. 앞에
서 자애로운 모습의 신들은 7단계에 걸쳐 나타났다. 죽음의 길
을 가는 사람은 순서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다. 먼저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의 빛이 나타나고,

그것도 인식하지 못하면 또 그 다음 단계의 투명한 빛이 나타났
다. 이 과정을 통해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악한
업장]이 너무 강해서, 수북히 쌓인 장애물 속에서 본능에 사로잡

혀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무지와 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자세히 알려 주어도 자유의 경지에 도달
하지 못하고 자꾸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과 영웅적인
스승과 수호하는 다끼니들이 나타난 다음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무서운 모습의 헤루까[피를 마시는 신] 무리가 나타난다. 이들 5
8명의 헤루까 무리는 이전에 나타났던 자애로운 모습의 신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다만 무서운 모습으로 형상만 바꾸어 나타나
는 것이다. 이들이 나타나는 시기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

들이 나타나는 중간계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 시기에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는 자제력을 잃고 심한 어지러
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빛에 대한 인식이 약간

이라도 있으면 자유의 경지에 쉽게 이를 수 있다. 두려움과 공
포를 불러일으키는 환상이 나타나고 있는 동안에는 마음이 흩어
질 여유가 없고, 집중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올바른
안내를 받지 못한다면, 그가 산더미처럼 엄청난 지식을 쌓았다

할지라도 그 지식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중간계 길을 안내
하는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생전에 수도원장을 지낸 사람이거
나 아무리 박식한 종교학자일지라도,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
하고 윤회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다. 이들이 그러할진대 평범한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두려움과 공포에 쫓겨
달아나다가, 결국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뒤범벅 된 비참한 차원
에 떨어지고 만다.

탄트라 요가를 수행한 사람은, 수행이 아주 미미했다 할지라
도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을 만나자 마자 즉시 자신의 수
호불인줄 알아본다. 그런 사람들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
들을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으며, 그들을 신뢰하고 하
나로 결합하여 붓다가 될 것이다. 생전에 무서운 모습의 신들을

시각화하는 수행을 했거나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며 예배했던 사
람, 아니면 적어도 그런 신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나 불상을
보았던 사람 역시 그들을 알아보고 자유의 경지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생전에 탄트라 수행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탄트라의
신들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중간계에서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날 때 그들의 본질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다. 아
무리 유명한 수도원장이거나 박식한 종교학자라 하더라도 탄트

라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아무런 징조도 나타내지 못한다. 무지개 빛 후광이
나타나지도 않고, 시체를 화장해도 사리 한 알 나오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서운 모습의 신

들이 나타나면, 자기를 해치려는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 대
해 적개심을 보이고, 그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 유명
한 수도원장이나 박식한 종교학자가, 죽으면서 무지개 빛 후광

이나 사리와 같은 징조를 남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에게는 탄트라의 내적인 수행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징조를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이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탄트라의 견해
를 오해하지 않고 신뢰한 사람은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나
는 중간계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간다. 깊은 차원의 탄트
라를 수행하기에는 근기(根氣)가 부족하고, 수행이 피상적이고

조잡하며, 행동 또한 깔끔하게 정화되지 않아 사회 생활에 문제
가 있던 사람일지라도 탄트라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
인 사람은 죽으면서 무지개 빛 후광이나 사리와 비슷한 징조를
남길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이 탄트라
가르침의 힘 때문이다.

수행의 경지가 신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창조 단
계와 그 신들과 결합하는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이나, 또는 핵
심 만트라를 반복하는 수행을 한 사람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이 중간계까지 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숨이

멎자 마자 영웅적인 스승들과 수호자 다끼니들과 수행원 신들의
이끌림을 받아 다끼니 붓다들의 순수한 낙원에 들어갈 것이 분
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뛰어난 수행자들의 죽음에는 맑은 하늘,

무지개,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 공간을 가득 채우는 향기, 천상
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눈부신 빛, 그리고 화장 뒤에
남는 사리 등이 징조로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은 탄트라의 가르침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만 있어
도 영적으로 특별한 정화(淨化)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티벳에서
는 요기와 요기니들의 시체를 화장한 다음에, 잿더미 속에서 진
주 비슷한 사리를 발견된 예가 많다. 때로는 불상이나 보살상
또는 수호불상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수도원장이나 종교학자, 또는 맹세와 서원을 깬 탄
트라 수행자나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
대한 가르침>을 읽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위대한

완성 [마하무드라]과 같은 고도의 수행을 한 사람은 죽음 중간계
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함으로 진리의 몸(法身)을 성취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읽어 줄 필요가 없다.
죽음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하면 진리의 몸(法身)을 성
취한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

나는 저승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하면 깨달은 몸(報身)을
성취한다. 탄생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하면 나투는 몸(化
身)을 성취하여, 탄트라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바람직한 환경
에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환생하는 사람은 전생에 쌓은 긍정적
인 진화의 추진력을 계속 키워 나가는 삶을 산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중생들을 돕기 위해 언제 어떤 모
습으로든 환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 가르침
의 진정한 의미는, 깨달음을 얻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은 무지와 혼란과 본능적인 습관에 이끌리는 고통스러운
환경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
관없이 억지로 태어나는 일은 결코 없다는 뜻이다.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
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명상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읽어 주는 내용을 이해하기만 하면 그 자리
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가르침이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비밀의 길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며, 무지를 일순간에
제거하는 가르침이며,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즉각 이르게 하는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따라서 이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절대 비
참한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그대는 죽음의 길을 가는 영혼에게

이 책과 함께 <육체의 자연스러운 해탈>을 읽어 주도록 하라.
이 두 가르침을 황금 만다라에 청옥을 박아 넣는 것처럼 서로
결합시키도록 하라.

<육체의 자연스러운 해탈>은 원래 문헌인 <명상을 통한 자유>
21쪽에 실려 있다. 내용은 <명상을 통한 자유> 시스템에 나오
는 100명의 붓다와 보살들과 신들에 관련된 만트라로 되어 있
다. 이 만트라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 티벳 사람들은 이
만트라를 적은 종이를 시체의 품 속에 넣어 두면 그 영혼이 처
참한 상태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읽어 주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다고 본다. 이제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중간계 길을 안내해 주기로 하자. 그대는 죽음의 길을 가고 있
는 사람의 이름을 3번 부르고 나서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
라.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시신 곁에서 읽어 주어야 한다.
만약 시신이 없다면 그가 늘 앉아 있던 자리나 누워 있던 자리
옆에서, 그가 거기에 있다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어 주어야 한
다. 그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읽는 경우라도 시신이 그대 앞에
있다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큰 소리로 읽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이미 나타났지만 그대는 그
빛을 깨닫지 못했소. 그래서 지금까지 방황하고 있는 거라오. 오
늘을 여덟째 날이오. 이제 무서운 모습의 헤루까 붓다들이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동요하지 말고 그들을 인식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붓
다(佛呼金剛)께서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검붉은 포도주 색이
며,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이며 다리가 넷이라오. 가운데 얼굴
은 검붉은 포도주 색이며, 오른쪽 얼굴은 희고, 왼쪽 얼굴은 붉
은 색이라오. 부릅뜬 눈은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고, 몸에서는 불

길을 내뿜고 있소. 그의 이마는 번갯불처럼 번쩍이며, 이빨은 숫
돌에 간 칼처럼 번뜩인다오. 그는 천둥 같은 소리로 아-라-라,
으아-하-하 웃으며, 슈-우 하는 태풍 같은 바람소리를 내며 나
타난다오. 그는 밝은 오렌지 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해골 바가지
를 뒤집어쓰고 나타난다오. 머리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장식

을 매달고, 목에는 시커먼 뱀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방금 자른
인간의 머리통을 걸고 있다오. 오른쪽 첫 번째 손에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들고, 두 번째 손에는 도끼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
는 칼을 들고 있소. 왼쪽 첫 번째 손에는 종(鐘)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쟁기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해골 바가지를 들고 있

다오. 그는 이런 모습으로 배우자 붓다 크로디쉬바리와 껴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오. 크로디쉬바리는 오른 손으로 위대하고 영
광스러운 헤루까 붓다의 목을 끌어안고, 왼 손으로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헤루까 붓다의 입에 대주고 있다오. 위대하
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주님은 그 피를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마신다오. 그가 피를 마시면서 내는 쩝쩝거리는 소리가 마치 천
둥 소리처럼 들릴 것이오. 그들의 온 몸의 털구멍에서는 금강저
(金剛杵)와 같이 날카로운 지혜의 불꽃이 발산되고 있소. 그들은
반인반조(半人半鳥)인 가루다가 떠받치고 있는 왕좌에 용사의 자
세로 앉아서, 이런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오.

이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라오. 어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을 증오
하거나 적개심을 품지 마시오. 그들은 그대 자신의 의식의 투영
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무서운 모습의 헤루까 붓다와

배우자가 곧 아버지 바이로차나(大日如來) 주님과 그의 배우자인
어머니 아카샤 다트비쉬바리라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마시오. 이들을 믿도록 하시오. 그대가 이들을 올바로 인식
한다면 그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오.

여기에 묘사된 수호불 헤루까 붓다의 모습은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붓다와 보살들의 일반적인 형상이다. 해골 바가지를
머리에 뒤집어 쓴 것은 5독-분노, 정욕, 시기심, 자만심, 무지-을
정복했음을 상징한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통을 목에 걸고

있는 것은 부정적인 태도와 정신적인 습관을 모두 극복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배우자 크로디쉬바리(문자적인 뜻은 잔인한 여
신 )와 껴안고 있는 것은 지혜와 자비의 결합을 상징한다. 해골
바가지에 담긴 피를 마시는 것은, 무지라는 악마의 생명력인 피

를 희열이 넘치는 자유를 가져다주는 연금액(鍊金液)으로 변형
시키는 궁극적인 지혜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피는 또
한 여성성 즉 초월적인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성
헤루까가 여성성의 상징인 피를 마시고 힘을 얻는다는 것은, 자
신의 자비가 초월적인 지혜를 통해 힘을 받아 나오는 것임을 상

징한다. 헤루까의 뱀으로 된 목걸이, 머리띠, 팔찌, 발목 장식,
허리띠 등은 뱀의 힘을 정복했음을 뜻한다.
헤루까가 손에 들고 있는 도구들은 여러 가지 깨달음을 상징한
다. 즉 중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무지와 망상의 굴레를 깨뜨리는

도구들이다. 금강저(金剛杵, vajra)는 천둥, 번개, 다이아몬드와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즉 지혜와
자비를 상징한다. 무서운 모습의 신들은 머리와 이마와 몸에서
초신성이 폭발하는 듯한, 금강저와 같이 날카롭고 강렬한 불꽃

을 내뿜는다. 이것은 그들이 금강저와 같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
고 있는 자비의 소유자라는 것을 상징한다. 가끔 언급되는 5개
나 9개의 뾰족한 날이 달린 금강저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왕좌를 떠받치고 있는 독수리 비슷한 반인반조(半人半鳥)인 가
루다 는 먼 곳까지 낱낱이 살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정복

하는 지혜의 힘을 상징한다. 이런 무서운 모습의 신들과 결합하
여 하나가 된 사람은, 진화 과정에 가로놓인 모든 어려움을 통
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이 가르침을 듣

고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붓다
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고 하나로 결합한다
면, 그는 깨달은 몸을 성취한 붓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