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사고는 그 자신의 죽음을 관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사고가 고전적으로
시도한다면 항상 그밖의 다른 것이 튀어나오지요 비교적 폭넓은 어떤 다른 관점에서
만일 누군가가 자신이 죽었다고 상상한다면 그는 여전히 삶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온갖 종류의 종교적 개념과 더불어 항상 복잡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고 속에서는 죽음을 적절히 볼 수 없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럴 수 없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매우 흥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죽어 있는 육신을 가정해 봅시다
그 유기체는 죽어 있고 그 에너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결국은 분리되어 버리고
맙니다
크리슈나무르티:사실 육체는 에너지의 도구인 셈이지요
봄:에너지가 신체에 주입되지 않은 결과 육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럴 경우 에너지가 어떠한 식으로든 육체에서처럼 정신에도 깃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그렇게 될까요?
크리슈나무르티: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봄:당신이나 그밖의 사람들은 흔히 '정신은 사고의 전체성으로 인해 죽는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러한 표현을 당신은 '죽어야 하는 것이 사고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크리슈나무르티:아주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봄:하지만 당신은 없어지는 것은 사고이며, 사고에 무감각해지는 것도 에너지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 의미를 조사할 수 있습니다 사고는 그 기능을
발휘할 때 정신이나 지성에 의해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사고가 더 이상
부적절할 때 에너지는 사라지며 사고는 죽어버린 유기체와 같게 됩니다
크리슈나무르티:옳은 말씀입니다
봄:그러나 정신이 이것을 인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고와 유기체 사이의
비교는 매우 빈약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고는 실체가 아닌 반면 유기체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기체의 죽음은 죽음보다 훨씬 더 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고가 죽어 없어지는 경우 우리는 또한 유기체에 대한
죽음의 본질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크리슈나무르티:명백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봄:말하자면 사고는 비록 작은 척도 위에 있을지라도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크리슈나무르티:우리가 말했던 것처럼 에너지는 양쪽 모두에 있습니다 운동중의
사고는 이러한 에너지의 속성을 가지는 반면 사고는 자신의 죽음을 볼 수 없습니다
봄:사고는 상상이나 계획이나 죽음을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러므로 사고는 죽음을 대하는 것입니다
봄:글쎄요, 스스로 환상을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크리슈나무르티:물론 환상입니다 사고는 불멸성에 대한 환상이나 죽음을 초월한
상태, 그 자신의 계속성을 위한 욕구를 창출해 왔습니다
봄:글쎄요, 그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겠지요 사고란 유기체의 계속성을
열망함으로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크리슈나무르티:그렇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계속 초월하게
되지요
크리슈나무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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