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 불안하고 죄 많고 무서우며 경쟁적인 실존을 넘어서 뭔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통적인
접근 방법은 둘레(주변)로부터 안으로 향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시간을 바치고 수련과
포기(단념)를 통해서 점차 그 내면의 꽃, 그 내적 아름다움과 사랑에 이르는
것인데-이것은 사실상 우리를 좁고 왜소하고 가짜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일을 다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조금씩 조금씩 벗겨내고, 시간을 들이고, 내일 하리라, 내생에
하리라는 것이다-그러다가 마침내 중심에 이르렀을 때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는데 왜냐하면 마음은 이미 무능력하고 무디고 무감각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관찰하고 나서 어떤 사람은, 그러면 도대체 다른 접근 방법은 없는가고
자문한다-즉 중심으로부터 폭발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세상은 전통적 접근방법을 받아들이고 따른다.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무질서의
일차적인 원인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약속된 리얼리티를 찾는데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쾌적한 정신 생활을 보증할 어떤 사람을 기계적으로 따른다. 비록 우리들 대부분이
정치적 횡포와 독재에 반대하지만, 속으로는 권위와 폭정을 수락하고, 우리의 마음과
생활 방식을 뒤틀어 일그러뜨리는 자를 수락하는 것은 가장 이상한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소위 정신적 권위, 모든 식전과 의식과 독단을, 지적으로가 아니라 참으로
거부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홀로 서 있으며 그리고 이미 사회와의 갈등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존경할 만한 인간이기를 그친다. 존경할 만한 인간은
그 무한하고 잴 수 없는 실재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바야흐로 완전히 그릇된 어떤 것-전통적 접근-을 거부함으로써 출발을 했는데,
그러나 당신이 만일
한갓 반작용으로서 그렇게 했다면 당신은 당신이 걸려들게 될 또하나의 틀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스스로 이거부는 아주 훌륭한 생각이라고 머리 속으로만 말하면서
그것에 관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그것의 어리석음과 미숙함을 이해한 까닭에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자유롭고 두려움이 없는 까닭에 엄청난 이해력과 총명으로서 그걸
거부한다면, 당신은 당신 주위에 어지러운 교란을 낳을 터이지만, 그러나 당신은 존경할
만함 respectability의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더 이상
찾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될 터이다. 그것이 알아야할 첫번째 것이다-즉 찾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당신이 찾을 때 당신은 다만 진열장 구경을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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