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을 삶이라 하고 들어감을 죽음이라 한다면
삶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삼분의 일 정도요
죽음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십분의 삼 정도요
태어나서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도 십분의 삼 정도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모두 삶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듣건데 섭생을 잘 하는 사람은
육지에서 외뿔난 들소나 범을 만나지 않고
전쟁터에서 무기의 상해를 입지 않는다고 합니다
들소는 그 뿔로 받을 곳이 없고
범은그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고
무기는 파고 들곳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에게는 죽음의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삶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삼분의 일 정도요
죽음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십분의 삼 정도요
태어나서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도 십분의 삼 정도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모두 삶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듣건데 섭생을 잘 하는 사람은
육지에서 외뿔난 들소나 범을 만나지 않고
전쟁터에서 무기의 상해를 입지 않는다고 합니다
들소는 그 뿔로 받을 곳이 없고
범은그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고
무기는 파고 들곳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에게는 죽음의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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