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를 가르치는 종교는 억압적이고 파괴적이며
가학적이고 피학적이다. 간단히 말해 내세를
가르치는 종교는 병든 종교다.
붓다가 가르치는 종교는 이와는 다르다.
붓다의 가르침에는 이상도 미래도 내세도 없다.
붓다는 지금 여기에서 피어나는 꽃을 가르친다.
그 무엇도 바랄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주어져 있다. 좀 더 깨어서 좀 더 맑게 보기만
하면 된다. 좀 더 깨어서 좀 더 밝게 듣기만
하면 된다. 그럴때 그대는 좀 더 밝게 존재할
수 있다. 그대는 깨어있는 만큼 존재한다.
좀 더 밝게 존재하고 싶다면 좀 더 깨어 있으라.
깨어있음 속에서 존재가 나온다. 깨어있지
못한 만큼 그대의 존재는 사라진다.
그대가 만취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거기에
그대의 존재는 없다. 잠잘 때도 그대는 거기에
없다. 이를 지켜본적이 있는가? 깨어 있을 때
그대는 변화한다.
그대는 존재의 중심속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무의식 속에서 잠을 자거나 깨어있지 못하면
존재의 느낌은 줄어든다. 즉 존재의 느낌은
깨어있음과 비례하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하면 께어있으라는 것이다.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깨어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깨어있는 것이다. 깨어있음 속에서
존재가 태어나고 그대가 태어난다.
깨어있음 속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그대가 태어난다. 나가 사라진 그대 에고
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 그대.... 이 그대는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순수 공이요
무한이다.
오쇼의 취대한 만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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