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무 결론 없이, 당신이 그것(공포)에 관해 축적해온 지식의 간섭없이 공포를 볼 수
있는가? 만일 당신이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과거이지, 공포가 아니다. 만일
당신이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처음으로 과거의 간섭 없이 공포를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당신의 마음이 그것 자체의 문제와 불안에 관해 속으로 혼잣말을 하거나 속으로 지껄이지
않아야 어떤 사람이 말하는 바를 들을 수 있듯이, 마음이 아주 고요할 때에만 당신은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그걸(공포를) 해소하려 함이 없이, 그것의 반대 즉 용기를 끌어들이는
일 없이 당신의 공포를 볼 수 있는가? 당신이 <나는 그걸 제어해야 해, 나는 그걸 없애야
해, 나는 그걸 이해해야 해>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구름, 나무 혹은 강의 움직임들을-이것들이 당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아주 조용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당신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그 요구들이
아주 실질적이고, 그 반응이 아주 빠르기 때문에 한결 어렵다. 그리하여 당신이 공포, 절망,
고독이나 질투, 혹은 마음의 다른 어떤 추한 상태를 정면으로 대면할 때, 당신은 당신의
마음이 그걸 보기에 충분하도록 고요하리만큼 그렇게 완전히 볼 수 있는가?
마음은 공포의 다른 형태들이 아니라 공포를 지각할 수 있을까-즉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공포를 지각할 수 있을까? 만일 당신이 공포의 세목들만을 보거나 당신의
공포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루려고만 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중심 문제, 즉 공포와 더불어 사는
걸 배우는 문제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포, 쾌락, 슬픔, 생각 및 폭력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0) | 2015.08.13 |
---|---|
공포와 같은 살아 있는 것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0) | 2015.08.11 |
공포는 나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당신은 (0) | 2015.08.10 |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질문은. (0) | 2015.08.10 |
이렇게 말해 보자-당신은 2년 전에 병을 앓았고. (0) | 2015.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