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로키, 세상을 파멸로 이끌 세 아이를 낳다

별관신사 2015. 10. 18. 05:29

로키가 마침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아스가르드에 시긴이라는 조강지처가 있었다.
그런데도 꾀돌이 로키는 만족할 줄ㅇㄹ 모르고 거인국으로 가서 거인족 여인 앙그르보다와
살을 섞어 둘 사이에 세 명의 괴물 자식이 태어났다.

첫짼ㄴ 뱀 요르문간드였다. 이 녀석은 치명적인 독을 뿜어대는 독사였다. 둘째는 늑대 펜
리르였다. 이 녀석은 얼마나 힘이 센지 날고 기는 거인들이 몇 명씩 달려들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셋째는 헬이라는 여자아이로 이 녀석만이 유일하게 사람하고 닮은 모양을

타고났다. 그러나 괴상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별처럼 많은 여자아이들 속에 데려다놓아도 금
방 알아볼 정도였다. 그녀의 상체 피부는 분홍빛으로 아주 비정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엉덩이 아래 피부는 썩은 시체 같은 검푸른 색이었다.

항상 말썽만 일으키고 다니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로키가 자식들을 낳았다는 소문을
들은 신들은 일급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그들은 운명의 여신들이 지키는 우르드 샘가에 모
여 대책을 숙의했다. 운명의 여신 세 자매는 신들에게 말했다.

그애들의 엄마는 사악하죠. 하지만 그 아버지인 로키에다 비할바는 아니죠. 그런 부부 사
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면 오죽하겠어요? 그애들은 끝까지 여러분을 괴롭히고 위험에 빠뜨
릴 겁니다.

신들은 로키의 아이들을 체포하기로 결정하였다. 오딘의 명령을 받은 체포조가 야음을 틈
타 요툼헤임으로 잠임했다. 그들은 앙그르보다의 침실로 침투하여 그녀가 눈을 비빌 틈도
없이 재갈을 물리고 몸을 묶었다. 이어서 그들은 아이들을 꽁꽁 묶어 오딘 앞에 대령하였다.

오딘은 뱀 요르문간드를 집어들어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 던졌다. 뱀은 허공을 가
르며 날아가 바다 밑바닥까지 곤두박질 쳤다. 그곳에서 녀석은 플랑크톤과 물고기들을 잡아
먹으며 자라났다. 다 자라났을 때는 몸이 어찌나 길어졌는지 바다 빝에서 대지 전체를 감사

고도 남아서 제 꼬리를 제 입으로 물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뒤이어 오딘은 여자아이 헬을 주저없이 아스가르드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녀는 세상
저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니플헤임의 안개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딘은 그녀에게
명령했다.

그곳에 내려가서 병들어 죽거나 늙어 죽은 자들을 돌보거라.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무엇을 먹더라도 항상 그곳을 죽은 자들과 나누어 먹어야 하느니라.
헬은 니플헤임에 집을 지었다. 파멸의 낭떠러지 라는 언덕 위에 거대한 성벽을 쌓고 그

안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헬의 궁전 엘류드니르(죽은 자의 집)는 두터운 두 개의 문을 통과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헬의 하인과 하녀는 움직임이 하도 굼떠서 과연 움직이는 것인지
서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헬이 음식을 담아 먹는 접시는 배고픔 이라

불렸고, 음식을 썰어 먹는 칼은 기근 이라고 불렀다. 헬이 누워 잠을 청하는 침대 이름은
병상 , 침실을 가려주는 커튼의 이름은 가물거리는 불행 이었다.
이제 늑대 펜리르만이 남았다. 이 녀석은 워낙 천방지축이라서 멀리 보내는 것보다는 신

들 가까이 두고 직접 감시하기로 했다. 펜리르는 겉보기에 다른 늑대와 조금도 다를 게 없
었으므로 신들은 그가 아스가르드의 푸른 벌판을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래도 워낙
사나운 놈이라 웬만한 신은 가까이 가기를 거려했다. 용감하기로 소문난 오딘의 아들 티르

만이 나서서 펜리르에게 먹을 것을 주며 달랬다.
펜리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아무래도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 같
았다. 게다가 운명의 여신들은 끔찍한 소리가지 하고 다녔다.

보통놈이 아니야. 두고 보라고. 운명의 그날이 오면 이 늑대가 오딘을 잡아먹고 말걸.
그 소리를 들은 오딘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당장 늑대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지만 이곳
은 성역 아스가르드였다. 그 어떤 생명체의 피로도 더럽힐 수 없는 곳이다. 어떤 일이 있어

도 늑대가 날뛰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어놓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오딘의 분부를 받은
신들은 단단한 쇠사슬을 준비하여 펜리르에게 갔다.
늑대야, 늑대야. 이 사슬을 끊어 보일 수 있겠니?

펜리르는 쇠사슬을 샅샅이 훑어보고는 말했다.
제법 단단하게 만드셨군. 하지만 이 정도쯤은 엿가락보다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지.
신들은 이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늑대의 몸에다 쇠사슬을 칭칭 감았다.

그걸 지금 묶었다고 묶은 거야?
늑대는 이죽거리면서 네 발에 힘을 주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불근 힘을 주었다. 그러자
쇠사슬은 마치 과자 부스러기처럼 툭툭 떨어져 나갔다. 깐짝 놀란 신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훨씬 강한 사슬을 만들었다. 이 사슬의 고리 하나하나는 부둣가의 닻보다도 컸다. 나르
기는커녕 들 수조차 없을 만큼 무거운 사슬이었다.
늑대야, 늑대야. 이것도 끊어 볼래? 그러면 아마 온 세상이 네 괴력에 찬사를 보낼걸.

펜리르는 한눈에 사슬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펜리르는 자신의 힘을
믿었다. 게다가 녀석은 당돌하게도 이런 소리까지 할 줄 알았다.
모험을 하지 않고는 명성도 얻을 수 없지.

신들은 꼴값 떨고 있네 하는 말을 삼키며 녀석의 목과 몸통과 다리에 사슬을 감았다.
그걸 지금 묶었다고 묶은 거야?
늑대는 다시 이죽거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슬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쩔렁거렸다.

그러나 한번에 끊어져 나가지는 않았다. 펜리르는 땅바닥에 마구 뒹굴었다. 어느 것이 늑대
의 근육이고 어느 것이 사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온몸에 힘을 주자 사슬은 다시 한 번 힘
없이 끊어져 버렸다.

사슬을 이루고 있던 수백 개의 고리들은 와장창 무너져 내리고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신들은 극심한 절망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이대로라면 오딘이 놈의 쩍
벌린 아가리속으로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오딘은 궁전을 왔다갔다하며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슬을 만들어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랜 시간 괴로워하며 생각에 잠겼던 오딘은 마침내 이마를 탁쳤다. 그는 프레이르의 전

령인 스키르니르를 검은 난쟁이들이 사는 나라인 스바르트알프헤임으로 보냈다. 스바르트알
프헤임에서는 험상궃게 생긴 수백 명의 난쟁이들이 불꽃을 튀기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아홉 세계의 지배자인 오딘의 부탁을 받고 왔네. 지금 아스가르드에서는 펜리르라

는 늑대 녀석 때문에 비상이 걸렸네. 자칫 하면 오딘이 그놈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게 됐지.
그러니 달라는 대로 황금을 줄 테니까 부디 아무도 끊을 수 없는 단단한 사슬을 만들어주게.
스키르니르의 사정을 들은 난쟁이들의 누이 어둠 속에서 반딧불처럼 빛났다. 그들은 자기

들기리 뭐라고 수군거리며 작업에 착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비단 끈처럼 부드럽
고 유연한 끈을 만들어 스키르니르에게 주었다.
이 끈은 글레입니르라고 합죠. 모두 여섯 가지 재료로 만들었지요.

스키르니르는 끈이 너무나 가볍고 부드러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여섯 가지란 뭔가?
고양이가 움직일 때 내는 소리, 여자의 콧수염, 산의 뿌리, 곰의 힘줄, 물고기의 숨, 새의

침, 이렇게 여섯 가집죠.
그것들로 끈을 만들면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뭔가?
우리 난쟁이들의 재주를 의심하시는 거요? 생각해보시오. 고양이가 우질일 때 왜 소리가

나지 않는가를. 여자들한테는 왜 수염이 나지 않는지를. 그리고 산에 뿌리가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증명해 보일 수 있소? 이처럼 이 여섯 가지는 당신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오. 우리는 그런 재료들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처럼 중요한 물건을 만들 때 씁니다.

스키르니르는 쾌재를 부르며 아스가르드로 뛰어올라갔다. 신들은 처음에는 스키르니르처
럼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설명을 듣고는 모두가 희색이 만면했다. 그들은 글레입니르를 들고
아무 거리김없이 펜리르에게 갔다. 그들은 펜리르를 데리고 세상 끝의 호수 한가우데 있는

링비 섬으로 갔다. 그곳에서 신들은 비단결 같은 끈을 내보이며 펜리르를 놀렸다.
늑대야, 늑대야. 너 이 끈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래봬도 제법 질긴 끈이란다.
글세 이렇게 가느다란 끈을 바보 같은 우리들은 한 명도 끊을 수가 없었지 뭐냐? 너라면

끊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로키의 아들 늑대 펜리르는 결코 저능아가 아니었다. 녀석은 끈 글레르입니르를
자세히 뜯어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것들 보라고. 이렇게 가느다란 끈을 끊어 보인다고 해서 그게 내 명성에 무슨 도움이
돼? 이 먼데까지 와서 날 놀리는 거야, 뭐야?
늑대는 다시 한번 끈을 힐끗 보고 나서 이어 말했다.

만일 이 끈을 만들 때 무슨 마법이라도 걸었다면 너희들이나 잘 간직하라고. 난 취미 없
으니까.
그러자 신들 가운데 한 명이 다급하게 나서서 펜리르를 달랬다.
이봐, 자네는 그 굵은 쇠사슬도 끊었던 막강한 늑대 아닌가? 이 따위 끈을 그렇게 두려

워하는 이유가 뭐야?
다른 신도 나섰다.
만약 자네가 이 끈을 끊지 못하면 우리가 풀어줄 테니 우릴 믿으라고.
펜리르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렸다. 시들은 그 흉측한 모습에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

났다. 펜리르는 눈을 부라리며 시들에게 대들 듯이 말했다.
내가 이 끈에 묶이면 너희들이 나를 잘도 풀어주겠다. 용용 죽겠지 하면서 아마 죽을 때
까지 날 갖고 놀려댈걸.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펜리르는 뱃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
는 기분 나쁜 목소시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 끈은 기분나빠. 하지만 너희들이 날더러 겁쟁이라고 놀릴 생각을 하니 그것도

못할 노릇이야. 이 일을 시작한 건 너희들이니 한 가지 조건을 걸고 내가 그 끈을 풀어보겠
어. 만의 하나 내가 끈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너희들 중에서 한 명이 내
입 안에 손을 집어넣으라고. 너희들이 나를 풀어준다는 걸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야.

아무도 예기치 못한 섬뜩한 제안이었다.
신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용감한 신 티르가 앞으로 나섰
다. 그는 말없이 오른손을 들어 펜리르의 커다란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다음 순간 신들은 순식간에 마법의 끈으로 펜리르를 붙들어 매었다. 펜리르는 마치 묘기
를 보이는 스턴트맨처럼 안간힘을 다해 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마법의 끈은 이전의 쇠사슬과는 달랐다. 늑대가 기를 쓰면 쓸수록 끈은 더

욱더 단단히 몸통을 옭아매었다.
늑대는 으르렁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 바람에 용감한 신인 티르는 오른손을 통째로 잃
었다.

신들은 늑대를 묶은 비단 끈 끄트머리에다 쇠사슬을 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바위에 구멍
을 내고 이 쇠사슬을 그 구멍 속으로 통과시켜 뺀 다음 그 끝을 매듭지었다. 그리고는 바위
를 땅 밑 1.5킬로미터 정도 깊이에 받아 넣은 뒤 또다른 바위덩어리를 그 위에 얹었다. 펜리

르는 이를 갈면서 피로 물든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러자 신들 가운데 한 명이 칼을 빼들고
는 늑대의 주둥아리에다 힘껏 내리꽂았다. 늑대는 끈으로 온몸이 묶인 데 이어 칼로 재갈까
지 물린 것이다. 울부짖는 늑대의 입 안에서 침이 흘러나와 강을 이루었다. 섬에서 호수로

들어가는 이 강은 그후로 본(기다림의 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강의 이름대로 로키의 자식들에게는 기다림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미드라그드 뱀은 세
계를 감싼 채 바다 밑에서, 헬은 시체와 안개에 둘러싸인 채 니플헤이에서, 그리고 늑대 펜

리르는 링비섬에서 묶인 채 최후의 결전 라그나랙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