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생명의 세포에 어떤 원형질이 있는가, 혹은 더 하등(下等)의
무기물이 있느냐 하는 따위에 관해서 쉴새없이 논쟁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을 벌이기 전에 우리들은 우선 다음한 가지 일을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우리들에게는 과연 생명의 관념을 세포에 얼버무려버릴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예컨대 우리들은 말한다. 세포 속에는 생명이 있다. 세포를 생명이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라는 근본 관념과 세포 속에 있는 생명의
관념은 전혀 다른 것일 뿐더러, 서로 일치하지 않는 두 개의 관념이다. 한
쪽의 관념은 다른 쪽의 관념을 배격한다. 나는 나의 전 육체가 남김없이
세포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인한다. 이들 세포는 내가 들은 바로서는 나와
같은 생명의 본질을 가지며, 나와 같은 생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생명 있는 것으로서 인식함은, 그저 내가 나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세포를 가진 나라는 것을 나누기 어려운 한 개의 생물로 의식하고
있으므로서다. 듣건대 나라는 것이 몸 전체는 골고루 산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그 무엇에 생명의 본질을 돌릴
것인가, 세포에게? 나자신에게? 만약 세포는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내가
인정한다면, 나는 생명의 관념으로부터 나의 생명의 중요한
기호(記號)―다른 한 개의 생물로서 의식하는 일―를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만약 내가 나를 독립된 한 개의 존재로서의 생명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나의 전 육체가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
의식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세포에 대해서 생명의 본질을
돌릴 수 없음도 역시 분명한 일이다.
무기물이 있느냐 하는 따위에 관해서 쉴새없이 논쟁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을 벌이기 전에 우리들은 우선 다음한 가지 일을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우리들에게는 과연 생명의 관념을 세포에 얼버무려버릴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예컨대 우리들은 말한다. 세포 속에는 생명이 있다. 세포를 생명이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라는 근본 관념과 세포 속에 있는 생명의
관념은 전혀 다른 것일 뿐더러, 서로 일치하지 않는 두 개의 관념이다. 한
쪽의 관념은 다른 쪽의 관념을 배격한다. 나는 나의 전 육체가 남김없이
세포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인한다. 이들 세포는 내가 들은 바로서는 나와
같은 생명의 본질을 가지며, 나와 같은 생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생명 있는 것으로서 인식함은, 그저 내가 나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세포를 가진 나라는 것을 나누기 어려운 한 개의 생물로 의식하고
있으므로서다. 듣건대 나라는 것이 몸 전체는 골고루 산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그 무엇에 생명의 본질을 돌릴
것인가, 세포에게? 나자신에게? 만약 세포는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내가
인정한다면, 나는 생명의 관념으로부터 나의 생명의 중요한
기호(記號)―다른 한 개의 생물로서 의식하는 일―를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만약 내가 나를 독립된 한 개의 존재로서의 생명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나의 전 육체가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
의식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세포에 대해서 생명의 본질을
돌릴 수 없음도 역시 분명한 일이다.
'래프 톨스토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山不厭高(산불염고) (0) | 2014.02.02 |
---|---|
흔히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과학은 모든 방면에서 생명을 연구하고 (0) | 2014.01.06 |
疑行無成(의행무성) (0) | 2013.12.19 |
인간생활의 근본적 모순 (0) | 2013.12.14 |
民少官多(민소관다) (0) | 2013.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