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아마 당신은

별관신사 2014. 10. 7. 04:01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 어떤 것인지 나는 궁금하다. 아마 당신은 <나는
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할는지 모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럼직한데, 특히 사회적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돼 있는 사람들이나 독단적 신념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과 사물의 있는 바 그대로에 만족하거나 약간의 변화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변화를
바라지 않음직하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관심할 바 아니다. 또 당신은 <그렇지만, 그건
너무 힘든 일이고, 나한테는 맞지 않는 일이다>라고 좀더 교묘하게 말할는지도

모르는데, 이 경우 당신은 이미 당신 자신을 봉쇄한 것이 될 터이고, 질문하는 일을 그친
셈이 될 터이며, 이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는데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일 것이다. 아니면
당신은 또 <나는 나자신 속에서의 근본적인 내적 변화의 필요성을 알지만 어떻게 그걸 할

수 있는가? 나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고, 그리로 향하도록 나를 도와달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이런 말을 한다면,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변화 자체가 아니다. 즉 당신은
기본적인 혁명에 정말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다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체계를 찾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어떤 체계를 줄 만큼 바보스럽고 또 당신이 그것을 따를 만큼
바보스럽다면, 당신은 다만 베끼고, 모방하고,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일 따름이며,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 속에 다른 권위를 세우는 셈이 되며, 그럼으로써 당신은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데 왜냐하면 당신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며 그렇지만 그걸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좇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체계와 마찰하는 당신 자신의 독특한 의향, 경향 및 억압들을 갖고 있으며
그래서 거기엔 모순이 있게 된다. 그래서 당신은 그 체계의 이데올로기와 나날의 실존의
현실성 사이에서 이중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려고 하면서 당신은

자신을 억압하는데-실은 정말 참된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당신인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에 따라 자신을 탐구한다면 당신은 항상 이차적인 중고 인간에
머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