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입니까? 우리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이익과 관계가 있을 때면, 자신에게만 신경쓰는 바람에 다른
사람의 이익에는 무관심해집니다.
크리슈나무르티: 내가 생각하기로는, 자신을 이기적이다거나 이타적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군요.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으로 부르면, 그 사람은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을 교수라고 부르면, 그 사람에게 접근하는 여러분의 태도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을
마하트마라고 부르면 그 사람 머리 주위로 후광이 생깁니다. 여러분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주시해 보세요. 그러면 '변호사', '사업가', '고관', '하인', '사랑', '신' 같은
말의 울림이 여러분 신경과 마음에 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 기능을 뜻하는 말이 지위의 고하를 암시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잘 들으세요.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어떤 말에서 특정한 느낌을 연상하는 이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자유로와지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아주 고약한 것, 천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길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쓰는 순간 여러분은 그 대상을 비난합니다. 그래서, "왜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입니까?" 하고 물으면서 슬며시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단어가 여러분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반응, 말하자면 신경의 반응,
정서적 반응, 지적 반응을 야기시킨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자신을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고 할 때 여러분은 다른 의문을 일체 제기하지 않습니다. 질투에
관련된 문제를 파고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우애'를 중히
여긴다고 하면서도 하는 짓은 우애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애'라는 말이 이들을 중독시킵니다. 그래서 이
말에 곧 설득당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더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야기시키는 신경상의, 혹은 감정상의 반응과는 상관없는 진실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이렇게 해야 합니다. 실험을 통해 어떤 말이 내포하고 있는 긍정적,
부정적 반응은 걷어 버리고 진실 자체를 꿰뚫어볼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긍정적, 부정적인 감정의 개입 없이 진실을 직시할 수 있으면, 이 직시하는 행위 자체는,
마음이 그 진실과의 사이에다 쌓아올린 장벽을 허물어 버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그
사람에게 접근할까요?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의 울림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신문과 책과 추종자들 모두가 그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했고 여러분은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여러분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멍청한 소리.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영향력을 걷어 버리고
그 사람을 그저 바라볼 수 있다면 여러분의 접근 방법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촌사람'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가난, 더러운 것, 단정치 못한 것을
연상시킵니다. 즉 이 말이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이런 데서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도 보지 말고 부정적인 시각으로도 보지
말고 그냥 보세요. 그러면 이기적이니 이타적이니 하는 것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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