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우리 모두에게는 일들을 참고 견디거나 그것에 익숙해지거나

별관신사 2014. 10. 16. 05:27

우리 모두에게는 일들을 참고 견디거나 그것에 익숙해지거나, 환경 탓으로 돌리면서
그것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아, 일들이 제대로 됐다면 나는 이렇지 않을 텐데>하고
말하거나 <나에게 기회를 달라, 그러면 일을 해내리라>고 하거나 또는 <나는 그 모든

불공평 때문에 부서졌다>고 하면서 항상 다른 사람과 환경과 경제 상황에 대한 우리의
불안정을 탓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만일 마음의 불안정에 길들어 있다면 그의 마음은 둔감해진 것인데, 그것은

마치 누가 그 주위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이상 주의하지 않으면서 익숙해진 것과 같다.
무관심하고 모질고 무감각하게 되면, 마음은 더욱더 둔감해진다. 만일 우리가 그것에 길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약을 먹으므로써, 정치 집단에 가담함으로써, 소리치고, 쓰고, 축구

구경 가고, 절이나 교회에 가고, 혹은 다른 형태의 즐거움을 취하므로써 그것으로부터 도피한다.
왜 우리는 사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일까? 우리는 죽음-이것을 나는 다만 하나의 예로서

들고 있는 것이지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실을 위장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이론, 희망, 신념들을 만들어내지만, 그러나 그 사실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실을 이해하려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것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 우려하고,
여론을 두려워하며, 직업이나 안정 혹은 그외의 수많은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한다.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것이지, 이것이나 저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사실을 똑바로 볼 수 없는가?
당신은 한 사실을 현재 속에서만 대면할 수 있으며, 만일 당신이 그것으로부터 항상
도피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현존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그것을 정면으로 만나지

못하며, 그리고 우리가 도피의 전 네트워크를 키워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도피의 습관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