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인간은 자기 욕망의 희생자입니다. 욕망은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어떻게 하면

별관신사 2014. 6. 23. 04:43

인간은 자기 욕망의 희생자입니다. 욕망은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어떻게 하면
욕망이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 욕망이 없는 상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장난일 뿐입니다. 욕망이
참상의 씨앗이 되니까, 여기에서 도피하려고 마음은 욕망이 없는 상태를 상정하고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이상을 성취시킬 수가 있을까." 하고,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욕망이 없는 상태에 이르려고 여러분은 욕망을 억제하시지요? 욕망의 목을 조여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욕망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되지 못한 수작이지요.
욕망이란 무엇입니까? 에너지 아닙니까? 여러분이 에너지의 목을 조르는 순간 자신을

미련한 인간, 생명이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셈입니다. 이게 바로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른바 종교적인 인간이라고 하는 자들이 욕망의 목을 졸랐습니다.
욕망에서 자유로와졌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자유로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의 목을 조이지 않는 일입니다. 에너지라는 것을 바로 이해하고 바른 길로 이를
이용하는 일입니다.
젊을 때 여러분은 에너지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 에너지는 여러분을 충동하여 산을

뛰어넘고 싶게 하고 벌에 이르고 싶게 합니다. 그런데 사회가 턱 끼여들어 여러분에게 그
에너지를 점잔이라고 하는 감옥에다 가두어 놓으라고 합니다. 교육을 통해, 갖가지 형태의
금제와 강제를 통해 이 에너지는 차례로 파괴당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더 많은'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에너지 없이는, 진리가 무엇인지
찾아 낼 수 없습니다. 이제 문제가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가
아니고, 간직하고 늘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앙이나 사회의 명령에 따라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로써 이 에너지를 진리와 신을 향한 운동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에너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조약돌이 파문을 이루듯이,
진리를 향한 에너지의 운동이 새로운 문화라는 파문을 지어내게 해야 합니다. 이 때의

에너지는 무한합니다. 이 에너지가 곧 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