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흑사병이 유행하여 많은 동물들이 잇따라 쓰러져 갔다. 마침내 동물의 왕자인 사자는
모든 동물들을 소집한 다음 꾸짖듯이 말했다. 이 불행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리신 벌
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에서 가장 죄 많은 자가 마땅히 하늘의 노여움을 풀어야

할 것이다.여러분은 구차한 변명은 말고 솔직하게 이 자리에서 죄를 참회해야한다.
사자는 왕답게 제일먼져 자기는 죄없는 양뿐만 아니라 양몰이꾼까지 잡아 먹었다고
참회했다. 그러자 아첨꾼인 여우가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너무 양심적이십니다. 그 천한 양이 임금님의 밥이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또 양몰이꾼도 평소에 짐승들은 깔보았던 만큼 고통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자 뒤를 이어 호랑이 곰 표범 등 실력자들도 적당히

자기 죄를 얼버무리며 참회했다. 이윽고 나귀의 차례가 왔다. 나귀가 말했다.
언젠가 저는 스님의 땅을 지나치다가 너무나도 배가 고픈 나머지 그곳의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제게는 그럴 권리가 없는 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물들은 입을 모아 유죄를 외쳤다. 대화내용을 기록
하고 있던 늑대는 불행의 원인인 나귀를 희생양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류가 있어온 이래로부터 지금까지 이 구태의연한 삶의 방식은 변화가 없다.
이것은 마치 인생교과서의 모범교사인 것 처럼 언제나 그렇게 통용화 되어 왔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꾸짖어야 할 대목에서 타인을 꾸짖는다

그것은 때때로 선보다는 악을 선택해야 할 구실을 그대 스스로가 재공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차라리 죄는 선이지만 벌은 악일수도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절학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