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완성되고 끝나고 종료되었다. 그 안에 남은 생명은
없다. 그러나 야생성은 스르르 빠져나와 지도와 그물
사이를 헤엄친다. 야생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사차원적이라 잡을 수 없다. 특히 물의 야생성은 지도화가
불가능하며 붙잡으려고 달려드는 지도제작자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세계에 위도와 경도라는 그물을
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코 물을 그물로 낚을 수는
없다. 조수는 지도위에 메마른 선으로 그려질 수 있지만
밀물과 썰물은 자신의 의지대로 들어왔다 나간다.
강은 가늘고 메마른 선으로 그려지지만 여전히 범람한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때에. 더 나아가 물의 야생성은
인간이외의 동물의 정신속에서도 지도화 된다.
바다거북은 자신이 알을 까고 나온 번식지에 다시 알을
낳기위해 2,400킬로미터의 바다를 가로질러 (고작 11킬로
미터 너비의 ) 조그만 어센션섬을 찿아간다.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다. 혹등고래도 태양과 달 조수 열수 분출공 산호초
해저산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신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 정신의 지도는 순수한 소리나 음파의
기억으로 구성된 음악일 것이다. 고래는 소리를 이용해
항해하고 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며 음악적 의미로
사고하고 노래의 형태로 기억한다. 그들의 지도는
북극에서 갈라파고스제도까지 길잡이따라 갈 수
있는 송라인과 다름없다.
제이 그리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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