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나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당신은 이 무의식의 문제를 물리치고 심리학자와
분석가들을 그럭저럭 모면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공포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단일한 움직임임을 이해할 때 그리고 그 움직임이 지향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움직임을 알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은 엄청난 질문에 부딪친다-즉 어떻게 우리 마음이 그동안
해온 단편화 없이 그걸 볼 수 있는가? 오직 전일한 공포만이 있는데, 그러나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어떻게 그 전일한 그림을 볼 수 있는가?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단편화된
삶을 살아왔으며, 생각의 단편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그 전일한 공포를 볼 수 있다. 사고의
기계 장치의 전과정은 모든 것을 조각으로 깨뜨리는 것이다-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나는
당신을 미워한다. 당신은 나의 적이며, 당신은 나의 친구이다. 나의 독특한 특성들과 의향들,
나의 직업, 지위, 특권, 아내, 아이, 내 나라와 당신의 나라, 나의 신과 당신의 신-이 모든 게
사고의 단편화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공포의 전체 상태를 보거나 보려고 하며, 그리고 그것을
단편들로 환원한다. 그리하여 생각의 움직임이 없을 때에만 마음은 이 전일한 공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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