格言 銘言모음.

군계일학(郡鷄一鶴)- 걸출한 인물은 어디서나 돋보인다.

별관신사 2018. 7. 8. 09:57

많은 닭들 중에서 한 마리릐 빼어난 닭을 뜻하는 말이다.

해소는 죽림 칠현 중의 한사람으로 유명한 위나라 중산

대부(中散大夫) 해강의 아들이다.


해소는 열살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의 생활을 해왔다.

아버지의 친한 벗으로 칠현의 한사람인 산도(山濤)가


이부에 있었는데 무제에게 강고(康誥-서경의 편명)

에 부자간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 하였아옵니다.

"해소는 해강의 아들이기는 하오나 어질기가 춘추의


대부 극흠에 못지 않사오니 바라옵건데 돌보아 주시어

비서랑으로 임명하여 주십시요" 하고 아뢰었다.

그랬더니 무제는 "경이 말한대로 라면 승이라도 시킬 수


있겠소.  낭으로 할 것 없이 말이요" 하고 비서랑보다

한단계 위인 비서승으로 관에 임명하였다. 해소가 처음

낙양에 올라왔을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사람인


왕융(王戎)에게 "어제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해소를

보았는데 기상이 좋고 맵시있어 독립불기(獨立不羈-독립

하여 아무도 억누를 수 없음)의 학이 닭의 무리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융은 "자네는 도대체

그 사람의 아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했다고 한다.

해소의 부친은 더구나 그러했던 모양이다.


요기서 군계일학 이라는 말이 나왔다. 해소는 얼마후에

여음의 태수가 되었고 상서좌복사(尙書左僕射)를 하고

있던 배위는 해소를 소중히 여겨 "해소를 위부의 상서로


한다면 천하에 이보다 더 뛰어난 영재는 없을 것을...."

하고 늘 말했다. 얼마후에 해소는 왕의 곁에서 직언을

올리는 몸이 되었다.  어날 해소가  의논할 일이 있어


왕에게 나아가니 왕은 몇몇 신하와 주연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 산하들이 해소가 악기를 잘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거문고를 가져오게 하여 왕이 해소에게 뜯어보라 하였다.


그러자 해소는 왕에게 정중히 아뢰기를 "왕께서는 나라를

새로이 하여 백성들의 모범이 되실 분이 아니십까? 저도

미흡한 자이오나 천자를 모시고 조복을 입고 궁중에 있는


터이옵니다. 악기를 들고 어찌 광대의 흉내를 낼 수 있겠

아옵니까? 평복으로 사사로운 연석이라면 사양하지 않겠

아오나..."라며 면박을 준 일도 있었다.


영흥(永興)원년에 8왕의 난이 한창일때의 일이다.

왕은 하간왕(河間王)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으나 전세가

불리하자 해소를 불렀다. 해소가 왕에게 가려했을 때


같은 시중인 진준(秦準)이 "이번 난리속에 가려면 좋은

말을 타야 할텐데 말은 가졌소?"하고 묻자 해소는 폐하의

친정(親征-왕이 몸소 정벌에 나섬)은 정(正)으로 역(逆)을


치심이라 어디까지 징벌이지 어찌 난리라 하겠소. 폐하를

경호하는데 실패했다면 신하의 충절이 어디있을 것이며

빠른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라고 말했다.


부름을 받은 해소가 행재소(行在所)에 도착한 것은 왕의

군사가 탕음(蕩陰)에서 패했을 때였다. 해소는 모두들

도망해버린 행재소에서 홀로 의관을 바로하고 창과 칼이


불꽃을 일으키는 어차(御車)앞에서 몸으로 왕을 감싸며

지켰다. 그리고 드디어 빗발치듯 하는 적의 화살에 맞아

왕의 곁에서 쓰러져 선혈로 어의를 물들였다.


왕은 깊이 슬퍼하여 전쟁이 끝난뒤에 근시(近侍)들이

왕의 의복을 빨려하자 "이것은 해시중이 흘린 충의의

피다. 씻어 없애지 말라."하며 옷을 빨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유식의 즐거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