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굉장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삶에 상당히 큰 부분이
이것은 하되 저것은 하지 말라는 규율과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일어나야 할
것인가,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인가, 무엇은 알아야 하고 무엇은 알면
안 되는 것인가에 대해 늘 지시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늘 읽어야 한다, 학교에 가야
한다, 시험을 보아야 한다는 등의 강요에 시달립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선생님, 사회,
관습, 성전, 이 모두가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정해 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은 이러한 규율에 매여 있습니다. 내 말 틀렸습니까? 여러분은 하라와 하지 말라의
포로입니다. 이러한 규율은 여러분이 갇힌 우리의 철창입니다.
자, 규율에 갇힌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여러분이 무엇을 두려워할 때, 여러분이 어떤 일에
저항할 때는 규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스스로를 자제하고 단속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발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합니다. 하지 않으면 사회-부모님, 선생님,
관습, 성전으로서의 사회-가 대신해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의문을 제기하고 탐구하는데도,
두려움을 모르는 채 배우고 이해하는데도 규율이라는 게 필요합니까? 배우고 이해하면, 여기에서참 질서가 생겨납니다. 이 질서는 강요나 강제에 의한 질서가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두려움 때문에 규율에 묶이고 사회의 강요에 굴복하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에 꼼짝 못 하면서 자유나 기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주성은 이것으로 끝장입니다. 문화의 뿌리가 깊을수록, 여러분을 규율의 틈 안으로 밀어넣고,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정하는 전통의 무게는 그만큼 더한 법입니다. 무게에 눌리
면,여러분은 증기 압착기에 깔린 사람처럼 심리적으로 납작해지고 맙니다. 실제로 인도에서 자주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전통의 무게가 어쩌나 엄청난지 여러분의 자주성은 깡그리 파괴당
하고말았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개인일 수 없습니다. 네, 여러분은 사회라고 하는 기계의 일
부가되었고, 이로써 만족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여러분은 저항하지 않습니다.
터지지도 않고 인습의 틀을 깨뜨리지도 않습니다. 부모님은 여러분이 저항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선생님 역시 여러분이 이 인습의 틀을 깨뜨리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육은 여러분을 기존의 틀 안에 맞게 길들이는 것만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들면
여러분은 완전한 인간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여러분의 용기를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한 기쁨도 창의성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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