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아들로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그는 그곳에서
대위 작곡법 등을 배웠으며 마드리갈 (14~16세기에
성행했던 이탈리아의 성악) 위주의 작품을 썼다.
그 후 만토바로 간 그는 1950년부터 만토바 공의 가수
비올 연주자로 활약했으며 1592~1605년사이에 마드리갈
3~5집을 반표했다.
그 당신 오페라 창시기에 해당하며 음악의 혁신은 시도
하는 많은 이탈리아의 진보주의 음악가들과 교제하면서
영향을 받기에 이른다.
1600년경 궁정음악장이 된 그가 오르페오(1607년)
아리안나(1608년) 을 발표하면서 활동에 박차를 가할
무렵인 1607년 아내 클라우디가 두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1612년에는 만토바공인 빈센초 1세가
사망하자 그는 만토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갔다.
1613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악장이
되면서 산 마르코의 연주능력을 크게 향상 시켰으며
국음악의 상영이 궁정내로 한정되어 있던 시기라
만토바 블로냐 파르마 궁정과 관계를 맺어 오페라 무용극
인케르메쵸(막간극) 등을 써서 궁정극장에서 상연했다.
1637년에는 베네치아에서 세계 최초의 대중 오페라 극장이
개관되면서 오페라가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 되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극장이 생겨나 몬테베르디의 창작활동이
마지막 절정을 이루게 된다.
75세가 되던 1642년 대작 "포세아의 대관" 이 완성에
이르기 까지 이탈리아 극음악의 대부로 활약했으며
베네치아 대성당 악장직에서 물러나던 1643년에 베네치아
에서 눈을 감았다.
오페라 사상 빛나는 금자탑을 쌓았던 그는 16~17세기에
걸쳐서 바르크 음악의 기초 확립에 절대적인 공로자로
남아있다.
지식콘서트 중.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게 하소서. (0) | 2020.08.06 |
---|---|
오르페오(L, orfeo, 오페라) (0) | 2020.08.06 |
르네상스 음악. (0) | 2020.08.06 |
종교적 지배를 받은 중세음악. (0) | 2020.08.06 |
고대 음악. (0) | 2020.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