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는 항상 지성에 대해, 어원은 물론 의미를 살펴 보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행간을 읽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는 책 속의 지식과
같은 것으로서 지성이 그 지식, 다시 말해 그 의미를 읽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이것이 지성에 대한 보다 나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행간을 읽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봄:그렇습니다 지식의 의미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 사전에는 정신적
기민성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렇겠군요 정신적 기민성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봄:어쨌든 지성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지성에 대해 이야기되고 있는 사실은 지성은 사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고는 경륜이 쌓인 두뇌에서 나오는 물리적이고 전기화학적인 과정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과학적 증명에 따르면 사고가 기본적으로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따라서 지성은 동일한 질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또 전혀 시간의 질서라고도 할 수 없지 않을까 하고 여겨집니다
크리슈나무르티:옳은 이야기입니다 '사고는 물질이다'라는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여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봄:물질이라구요? 나는 오히려 그것을 물질적 과정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크리슈나무르티:옳습니다 사고는 물질적 과정이지요 하지만 물질적 과정과 지성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지성은 사고의 산물이 아닐까요?
봄: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여겨집니다
크리슈나무르티:어째서 우리는 사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까요?
봄:간단히 말해서 사고는 기계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크리슈나무르티:사고가 기계적이라는 이야기는 옳다고 여겨집니다
봄:반면에 지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래서 사고는 측정가능하지만 지성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지성의 존재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요? 사고가 지성과 아무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면, 사고의 중단은 지성의 안식인 셈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지성은 시간이 아닌 사고로부터 독립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봄: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봄:제 입장은 현재의 과학적 견해와 연관된 사고의 틀 속에서 이러한 것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봄:그것의 적합성 여부를 살피고 나면 지성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은 지성이란 항상 존재하는가라는
것입니다
봄:존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것을 다시 말해 지성을 방해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당신도 알다시피 힌두교는 지성이라고는 할 수 있는 브라만(역주:
인도 사성제도의 제 I 계급인 승려계급)이 항상 존재할 뿐 아니라, 환영
물질 어리석음 사고에 의해 창조된 온갖 종류의 장난에 의해서도 발견되는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봄:글쎄요 그렇긴 하겠지만, 우리가 지성이라는 영원한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자세히 살펴보면 그 뜻은 알 수 있습니다 힌두교인들의 가정은
지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봄:그 항상이라는 말 자체에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크리슈나무르티:그렇습니다
봄:항상이란 말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옳은 이야기입니다
봄:바로 그 점이 난점이지요 시간은 사고입니다 내가 사고는 시간의 질서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시간은 사고의 질서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고는 시간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 사실상 사고는 시간인 셈입니다
내 생각으로 사고란 한 순간에 시간 전체를 휩쓸어 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고는 그 자체가 물리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인식함이 없어 항상
변화하게 됩니다 물리적인 이성만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봄:합리적인 이성에서는 그렇지 않겠지요
봄:이성은 전체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두뇌의 물리적 운동과 연관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이성은 환경과 그밖의 온갖 것에서 비롯됩니다
봄:따라서 사고는 시간과 함께 변하므로 그 뜻의 일관성은 없어지며 또 그
모순성으로 인해 임의로 변하게 됩니다
크리슈나무르티:나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봄:일단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물은 변화하는 과정에 놓이게 되며 따라서
모두 변하고 맙니다 결국 인간은 '나는 시간안에 존재하다'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시간이 확장되어 그 영역이 넓어지면, 즉 내가 존재하기 전의 시간으로 점점 거슬러
올라가거나 그 반대로 미래로 나아간다면, 시간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정복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나는 영원하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그 어린이는 자신이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시간은 존재의 근본이라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은 상식적인 견해일 뿐 아니라 과학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강력한 조건적 상황이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것은 관찰자와 피관찰자 사이의 조건적 상황보다 더 강력하다고 생각됩니다
크리슈나무르티: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사고는 시간에 대한 것으로 측정가능한
동시에 변화하고 수정되고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지성은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봄:그렇습니다 다른 질서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나는 시간과
관련된 이러한 사고에 대해 흥미로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과거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과거는 미래를 탄생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사고의 작용일 뿐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똑같이 현재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움직임, 즉 그 전체적인 방식은 움직임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전체적인 방식은 움직임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봄: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수직으로 움직입니다 그 전체적인 운동--다시
말해 나는 그 움직임이 또다른 시간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나의 의견도 전적으로 그와 같습니다
봄:하지만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렇지요 지성은 시간에서 벗어나 결국 시간의 운동인 사고와
관련을 맺고 있지 않습니까?
봄:하지만 사고는 그것과 관련을 맺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크리슈나무르티:나는 그럴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내 생각에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봄:관련이 없다고요? 그러나 당신이 구별한 지성적 사고와 비지성적 사고를
살펴보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만
크리슈나무르티:그렇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성, 즉 비지성적 사고를
인식하는 지성이 요구됩니다
봄:그러나 지성이 사고를 읽는다면 그 관계는 무엇입니까? 또 지성에 대한 사고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크리슈나무르티:사고는 시간인 동시에 시간 속의 운동입니다 사고는 측정가능하며
시간 속에서 그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고 변형됩니다 지성은
시간 안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봄:어쨌든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의미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사고는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크리슈나무르티:사고가 기계적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러 방면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성 또한 기계적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봄:나는 우선 기계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기계적인 것의 의미는 반복적이고 측정가능하고 비교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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