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우리의 가장 커다란 어려움중의 하나는 우리 스스로가 정말 분명히 보는
일로서, 그것은 바깥 사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적 삶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가 나무나
꽃이나 또는 사람을 본다고 말할 때, 우리는 정말 그들을 보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
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는데 지나지 않는 것일까? 즉 당신이 나무를 보거나 어느날 저녁
빛나는 구름을 보면서 기뻐할 때, 당신은 그것을 단지 눈이나 지적으로 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완전히, 정말 보는 것일까? 당신은 가령 나무 같은 객관적 사물을, 아무 연상 없이,
그것에 관해 당신이 갖고 있는 지식도 없이, 아무 편견이나 판단 없이, 당신과 나무 사이에
어떤 막을 만들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어떠한 말도 없이 그것을 본
경험을 해본 일이 있는가, 그렇게 해보고,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존재를 다해, 당신의 에너지의
전부를 기울여 나무를 볼 때 실지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그 강렬함 속에서 당신은
관찰자가 전혀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즉 오직 주의력만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부주의가 있을 때 거기엔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이 있다. 당신이 어떤 것을 완전한 주의력을
가지고 보고 있을 때 거기엔 개념, 공식, 혹은 기억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것이 이해하기
위해 퍽 중요한데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매우 조심스런 연구가 필요한 어떤 것을 구명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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