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의 전적인 포기에 있으며, 자기포기는 와전한 엄격함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데-이 엄격함이란 성직자의 그것처럼 가혹함, 제재, 규칙 및 순종이
아니고, 옷, 생각, 음식 및 행위의 엄격함도 아니며, 완전한 겸손인 완전히 순진하게 되는
엄격함을 말한다. 그럴 때 거기엔 성취도 없고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도 없다-즉 거기엔 첫발이
있을 뿐이며 이 첫발이 영원한 걸음인 것이다.
말하자면 당신이 혼자 걷고 있거나 누구와 같이 걷고 있다가 하던 말을 그쳤다. 당신은
자연에 둘러싸여 있고, 거기엔 개 짖는 소리도, 차 지나가는 소리도, 또는 새가 나는
소리조차도 없다. 당신은 완전히 말이 없고 당신 주위의 자연도 완전히 말이 없다. 관찰자나
관찰되는 것이 다같이 그런 침묵의 상태에 있을 때-관찰자가 자기가 관찰한 것을 생각으로
번역하지 않을 때-그 침묵 속에 아름다움의 판이한 내용이 있다. 거기엔 자연도 관찰자도
없다. 있는 건 완전히 고독한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고독-고립이 아니라-고요 속의
고독이며, 그 고요가 아름다움이다. 당신이 사랑할 때, 거기 관찰자가 있는가? 사랑이 욕망이고
쾌락일 때에만 관찰자가 있다. 욕망과 쾌락이 사랑과 결부되지 않을 때, 사랑은 강렬하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그것은 어제도 내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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