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기포기와 함께 나무나 별 또는 번쩍이는 강물을 보는 마음만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리고 우리가 정말 보고 있을 때 우리는 사랑의 상태에 있다. 우리는 흔히
비교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알거나 혹은 사람이 짜 맞춰 놓은 생각을 통해서 아는데, 이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대상에 속한 것으로 돌린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내가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내가 향유하는 까닭은 건축에 대한 나의 지식 및
다른 건물들과의 비교 때문이다. 그러나 인제 나는 자문한다, <대상 없는 아름다움이
있을까?> 검열관이며 경험자이며 사고자인 관찰자가 있을 때, 아름다움은 외적인 어떤 것,
관찰자가 보고 판단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거기엔 아름다움이 없으며, 그러나 관찰자가 없을
때-이런 상태를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명상과 탐구가 요청되지만-비로소 대상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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