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파고드는 이야기들.

노래하는 새와 우는 새.

별관신사 2019. 11. 5. 12:21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니러 우니로라.


고려시대의 노래 청산별곡이 구절처럼 자고 깨기만

하면 눈물과 울음으로 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슬퍼서 울고 배고파서 울고 ...


심지어 즐러운 일이 있으면 이번에는 즐거워서 운다.

아메리카 슈우 인디언들은 잘 울기로 이름난 종족이라

하지만 그들도 결코 우리를 따르지는 못했으리라.


울음과 눈물을 빼놓고서는 한국을 말할 수 없다.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 까지를 울음으로

들었다.


운다는 말부터가 그렇다. 우리는 절로 소리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운다고 했다. birds sing 이라는 영어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들이 운다가 된다.


sing 은 노래부른다는 뚯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반대로

운다 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똑같은 새소리였지만

서양인들을 그것을 즐거운 노래소리로 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슬픈 울음소리로 들었던 까닭이다.

같은 동양인이라 해도 중국에는 명(鳴)과 재(啼)가 있어

읍(泣)이란 말과 엄연히 구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소리를 들어도 운다고 하고 문풍지

소리가 나도 역시 그것을 운다고 한다.


방(房)안에 혓는 촉(燭)불 눌과 이별(離別) 하였관대

겉으로 흐르는 눈물 디고 속타난 줄 모르난고.


라는 시조를 봐도 촟불이 타는 것 까지도 우는 것으로

보았으며


간밤의 우던 여흘 슬피 우러 지내여다 라고 한 원호(元昊)

는 냇물의 흐름소리 또한 통곡소리로 들었다.

성웅(聖䧺)이라고 일컷는 이순신도 그의 난중일기에


적기를  "울고 또 울고 그저 어서 죽기만을 기다린다"

고 눈물을 뿌렸다.  "간 봄 그리매 모든 거사 우리 시름

(지나간 그리워하며 모든 것이 울며 서러워한다)"


향가 모죽지랑가에서 처럼 모든것이 울었다.

일목일초(一木一草)에도 눈물이 있고 끝없는 쇠북

소리나 여울물 소리에도 울음이 있다. 슬픔이 많은


민족이기에 그렇게 들리기만 했던 까닭이리라.

속담에 울고 먹는 씨아 라는 말이 있다.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씨아를 돌리는 저 여인들이 가슴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맺혀 있었던가?

그러기에 여인들은 씨아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목이 맨

울음소리로 들었고 그렇게 울면서도 여전히 목화를


타야만 (먹어야)하는 씨아의 모습에서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울면서도 하라는 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것을 울고먹는 씨아라고 말했다.


이렇듯 곡으로 시작하여 곡으로 끝나는 것이 우리

민족의 풍속이였다.  초하루와 보름은 전통적으로

우는 날이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날로부터 발인할


때까지 곡을 그치지 않고 매장한 이튿날은 도 초우재

라고 울고 삼일째 되는 날을 삼우재라 하여 곡한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삭망때마다 제사하니 또 울어야


한다. 그것도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음악적

상태로 까지 격식화한 곡법에 맞춰서 울어야 했다.

반드시 제삿날이 아니더라도 시골 아낙네들이 푸념


하여 우는 곡성을 들어보면 육자배기나 시나위 가락

과 같은 음조로 그 장단 박자가 놀랍도록 치밀하게

짜여 있음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울어야 효자였고 잘 울어야 충신이며 열녀였다.

나아가서는 울지 않는자 한국인이 아니다 라는 가설

까지 생겨날 법 하다. 원래 살롱이나 댄스파티라는


것이 없었던 이 나라에서는 사랑도 울음으로 했던

것이다. 대부문의 옛날 이야기(러브스토리)는 대개

이렇게 시작했다.


"어느 어스름한 달밤 외딴집에서 가냘픈 여인의 곡성이

들려 왔더란다. 지나가던 나그네는 하도 그 울음소리가

애절하기에 찿아가 그 연유를 물은 즉 ....


이렇게 해서 청상과부와의 사랑이 싹트게 마련이다.

울음은 남녀간의 내외도 관대하게 풀어주는 중화제

였던가? 이래저래 "눈물이 골짝난다" 속담대로 울음이


이 땅을 덮었다 아무리 시시한 국산 영화나 방송국이라

할지라도 우는 대목만은 감히 어느나라의 것도 그것을

따르지 못한다. 우는 연기만큼은 어떤 배우를 시켜도


훌륭하게 해 치운다. 먼 조상으로 부터 물러받은 유산이

바로 울음이요 눈물이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울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그리고 어떻게 그눈물을 미화했으며 또 어떻게 그

울음 속에서 우리의 모럴을 빚어 만들어 내었던가?

우리의 예술과 문화가 이미 수정알 같은 눈물에서


싹터 그 눈물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의 흙속에 저 바람속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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