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그 자귀난 배의 우수.
우리의 슬픔과 울음의 그 대부분은 가난과 굶주림에서
온 것이였다. 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속담 가운데도 가난과 굶주림에 관한것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배고픈 설움
보다 큰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였다.
한국의 아이들은 대개 팔과 다리에 비해 배가 크다.
참외씨나 수박씨가 묻어있는 발가벗은 그 이아들의
장구배야 말로 우리 우수의 상징이였던 것이다.
위확장에 걸린 한국의 아이들은 푸른 하늘을 나는
새를 보아도 좀처럼 동심을 깨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 나온 노래는 꿈의 노래가 아니라
쓰라린 굶주림의 탄식이였던 게다.
황새야 황새야 뭘 먹고 사니
이웃집에서 쌀 한 됫박 꿔다 먹고 산다
언제 언제 갚나
내일모래 장보아 갚지.
이런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자라났다. 모든 문제는
먹는데에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굶주림의 어두운 그늘이 따랐다.
꾸엉 꾸엉 꾸엉서방
아들 낳고 딸 낳고
무얼 먹고 사나
앞밭에 가 콩 한되
그럭저럭 먹고 살지
떡해 먹자 부엉
양식 없다 부엉
걱정 말게 부엉
꿔다 하지 부엉
언제 갚지 부엉
갈(가을)에 갚지 부엉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고 있다. 세상의 인심과 현실의
고통을 모르는 그들이지만 여전히 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먹는것에 대한 근심이요 불안이다.
"토끼야 토끼야 산속의 토끼야 겨울이 오며는 무얼
먹고 사느냐" 그 꿈많은 시절에도 이나라의 아이들은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먹는 타령을 해야만 된다.
생일이 돌아오면 잘사는 집에서든 가난한 집에서든
으례 밥을 고봉으로 수북히 담아주는 것이
하나의 의례적인 풍속이 되어버렸다.
이날만큼 마음껏 먹어 보라는 눈물겨운 선물이였으리라.
이어령의 흙속에 저 바람속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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