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개념과 원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 된다. 그리고 논쟁이 중요해
진다. 그때 무슨말을 하든 사랑의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랑의 언어는 그렇지 않다. 그때 말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말은 단지 가슴을 담는 그릇이다. 가슴과 가슴의 전달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세상에서 찿아보기 드문 것이다. 파르바티 (데비의
다른 이름) 는 시바의 무릎위에 앉아서 묻고 있고 시바는 대답한다.
이것은 사랑의 대화이다. 거기에는 어떤 갈등도 없다. 시바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 왜 사랑의 언어에 대해
이토록 강조하는가? 그대가 스승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때 모든 행동
양식이 변화된다. 그때 이미 그대는 귀를 통해 스승의 말은 듣는게
아니라 스승을 마셔 버리는 것이다. 그대 그의 말은 상관이 없다.
말 중간에 흐르는 침묵이 오히려 더 중요해 진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에 의미가 있을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
그의 몸늘림 그의 자비한 사랑은 하나라고 놓칠 수가 없다. 이것이
탄트라가 고집하는 구조이다.
오쇼의 탄트라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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