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마음의 기능이란것이 나누는 것 뿐이라서 오직 이중성만을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은 하나의 프리즘처럼 작용한다. 빛이 프리즘으로 들어 올 때 그것은 일곱가지
색깔로 분리된다. 마찬가지로 마음 역시 어떤 대상을 그 자체로 가만두지 않는다.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을 때 까지 분해시켜 버리고 만다. 거기에는 오직 분별만이
남아있다. 마음은 가장 작은알갱이에 이를때 까지 분별을쉬지 않는다. 그래서
그대가 진실을 알려면 실체를 이해 할려면 지금까지의 마음 작용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분석이 아니라 합일의 길이다. 거기에는 마음이 아니라
무심이 필요하다. 탄트라는 분별하는 것을 부정한다. 전체는 전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부분은 삼사라이고 우리에게 감추어진 부분은 모크샤나 열반의
세계이다. 혹은 그대가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그러나 그 부분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그대는 그것을 미래의 언젠가 올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존재계
속에는 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 그대는 그 속에 서 있다. 그대가 무심의 상태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대에게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그대는 지금 태앙이
떠오르고 있는데 두 눈을 꼭감고서 태양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지금 여기
에 이미 있다. 그대가 눈을 뜨기만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실로 그대에게 다가올
것이다.
탄트라비전에서.
마음은 하나의 프리즘처럼 작용한다. 빛이 프리즘으로 들어 올 때 그것은 일곱가지
색깔로 분리된다. 마찬가지로 마음 역시 어떤 대상을 그 자체로 가만두지 않는다.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을 때 까지 분해시켜 버리고 만다. 거기에는 오직 분별만이
남아있다. 마음은 가장 작은알갱이에 이를때 까지 분별을쉬지 않는다. 그래서
그대가 진실을 알려면 실체를 이해 할려면 지금까지의 마음 작용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분석이 아니라 합일의 길이다. 거기에는 마음이 아니라
무심이 필요하다. 탄트라는 분별하는 것을 부정한다. 전체는 전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부분은 삼사라이고 우리에게 감추어진 부분은 모크샤나 열반의
세계이다. 혹은 그대가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그러나 그 부분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그대는 그것을 미래의 언젠가 올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존재계
속에는 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 그대는 그 속에 서 있다. 그대가 무심의 상태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대에게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그대는 지금 태앙이
떠오르고 있는데 두 눈을 꼭감고서 태양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지금 여기
에 이미 있다. 그대가 눈을 뜨기만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실로 그대에게 다가올
것이다.
탄트라비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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