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전자 산업 시대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합리적 사고는 다분히 수학적이면서도 은연중에 경제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이 요구하는 소위 합리적 사고는 비합리적
사고와 흔히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결합하려는 강한 경향을 가진다. 그와 같은
경향이 반영해주는 것은 현대인은 여전히 미신을 최선의 무기로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고대, 중세, 근대, 현대가 뒤범벅이 되어 있으며,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가 혼합되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자본주의와 기계 문명이 숨가쁘게 질주하는
지금 이곳에는 미신 내지는 미신적인 요소들이 강한 세력을 소유하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일정한 과정이 역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사에도 특정한 과정이 있다. 그렇다면 돌연변이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실은 돌연변이란 말도 인정한 과정을 인정하며 그 과정이 빠르다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아득한 태고적의 인간들은 오늘날의 인간들처럼
발달되고 복잡한 지성 능력을 소유하지 않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해와 달과
바람 그리고 돌과 꽃 등 모든 자연 대상이 살아서 숨쉰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본능을 충족시키려는 동기에서, 곧 배불리 먹고 편히 자려는 목적에서 특정한
대상들을 의존하였다. 신화에 등장하는 곰이나 호랑이 또는 알과 같은 개념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여 준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졌을 때
씨앗 자체가 빈약하거나 토질 등의 조건이 알맞지 않을 때 돋아나는 싹은 가냘프기
짝이 없다. 인간의 초기 상태는 마치 이러한 씨앗에서 돋아나오는 싹과 다를 것이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싹이 적절한 영양분과 햇빛에 의하여 자발적인 유기체의
활동으로 스스로 성장해나갈 때 가지와 잎이 생기를 얻으며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튼튼한 식물로 성장하여 드디어는 탐스러운 꽃을 피우며 씨앗을 맺는다.
이러한 과정을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이자 문화이다.
한 사물 또는 사태가 자신의 전체 과정을 거칠 때 인간의 의식은 전체성을
파악한다. 전체과정을 거치지 않고 부분에만 머물 때 인간의 의식은 부분밖에
파악하지 못하며, 동시에 부분만을 파악하는 의식은 아직 자신과 대상의 구분 및
자기 자신에 관한 올바른 앎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코끼리와 장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다리만 만지고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든가, 몸통만 쓰다듬고 코끼리가
벽과 같다든가 하는 것은 결국 사물을 부분적으로 파악하는 상태에 불과하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며 자신과 대상을 구분할 줄 모르는 의식은
미신에 물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얼핏보기에 미신은 인류의 역사 초기에 삶을 좌우한 것으로 보기 쉬우며 또한
오늘날에도 미개한 인종 사이에서 번창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보다 더
날카롭게 살펴볼 경우 상당한 문화 수준을 소유한 현대인도 다분히 미신을 신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신의 형태는 나라마다 지방마다 다르지만 그 본질은 동일한
것이다. 미신의 뿌리는 샤머니즘에 있다. 해룡을 섬기는 예를 보자. 어부들은 많은
물고기를 잡아서 생존 본능을 충족시키려고 하나 뜻하지 않는 순간 바다의 재앙을
당하여 배와 인명의 손실을 당하는 체험을 가지고 있다. #1 바다에 대한 두려움
#2 생존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자기 방어 #3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은 어부들로 하여금 의존 대상을 상징적으로 구성하게 한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섬기게 되는 대상이 바로 용왕신으로 나타난다.
우리들이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미신은 #1 구체적인 양상에서 #2 내면적인
윤리관에서 #3 종교적인 초월에서 살필 수 있다. 미신을 구체적인 양상에서
보면 그 형태가 지나치게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점.굿.성명 철학 등 우리 주변에 일반화된 현상만을 음미해보기로 하자.
미신이란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 방식의 한 가지로 불행을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미신은 비단 인간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다. 일부
심리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특정한 동물도 일종의 미신을 지닌다. 예컨대
비둘기가 우연히 날개를 퍼덕였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모이가 앞에 떨어졌다고
하자. 다음부터 비둘기는 배고플 경우 날개를 퍼덕이는 미신을 지닌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개가 귀를 긁적거리고 있을 때 돌이 날아와 개를 때렸다고 하자.
이 경우 개는 얼마간 좀처럼 귀를 긁적거리지 않는 미신을 가진다고 한다.
굿.점.성명 철학 등은 사회적인 미신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이와는 달리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각양각색의 미신도 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미신
중에는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있다",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 "꿈에 돼지를 보면 횡재수가 있다", "임산부가 뱀꿈을 꾸면 사내
아이를 낳는다" 등등 무수한 많은 미신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미신들
중에는 상징적인 근거를 배후에 깔고 있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허황된
것들이다. 예컨대 눈이 충혈되었을 경우에 실에 꿴 바늘을 바라보면
치료된다든가 발이 저릴 때 콧잔등에 침을 바르면 낫는다고 하는 미신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예로 든 미신들은 어느
정도로 일반화된 미신이고 이 밖에 아무도 모르게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미신이 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착수할지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전을 던져서 앞이나 뒤가 뒤집어지는 것에 따라서 행동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부터 다섯까지 헤아린 다음에
시작한다. 또 어떤 사람은 길을 걸어갈 때 언제나 가능한 한 길의 가장자리를
걸어가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반드시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고
한다. 각 개인은 남의 눈에 띄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저마다의 미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미신은 습관 및 심리적인 갈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개인적인 미신은 거의 한 개인에게 습관화되어 있어서
그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미신을 저버리기 어려우며 #2그러한
미신은 행운을 가져다주리라는 무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비록 현실이 그렇지
않을지라도 각 개인은 욕구와 현실의 갈등 속에서 우연적으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신념으로 자신의 미신을 은연중에 고집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개인적인 미신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미신이 성립한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지금 이곳의 사회적인 미신의 형태로는 굿과 점 등이 있는데 굿이나 점 등은
그 종류를 헤아리자면 수없이 많으므로 여기에서는 간단히 일반적인 특징만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우주와 아울러 인간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절대자(또는 절대자들)를 믿으며 그것을 일컬어 신령님이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는 신령님의 힘을 빌어 인간의 앞날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을
사람들은 무당이니 점쟁이니 심한 경우에는 도인이니 하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무당이나 점쟁이나 도인의 행동방식을 철학이라고
일컫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연을 손바닥에 놓고 보듯이 환하게 알아서
길흉화복을 좌우할 수 있는 이들을 사람들은 원하며 또한 그러한 이들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볼 때 미신이란 결국 앎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미신
자체를 확실한 앎, 선과 악에 대한 가치,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기준을 결정해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신과 철학을 혼동할 뿐만 아니라 미신을
유일한 철학으로 믿는다. 그들은 내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대상이나 힘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미신의 일반적인 특징을 밝히기 위하여 나와 남들의 몇가지 구체적인 예들을
들어보기로 하겠다.
첫번째 예로 김군은 중학교 3학년이고 그의 형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김군과 그의 형은 모두 자기 반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가 두 달 가량 남아 있었다. 김군의 모친은 두 아들에게 온갖 희망을
걸고 있었으며, 아들들이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에 입학하기를 고대하면서
두 아들을 뒷바라지하여 왔다. 어느 날 동네에 쪽집게처럼 점을 잘 친다는
관상쟁이 할머니가 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김군의 모친은 두 아들을 데리고
마침 관상쟁이 할머니가 점치고 있는 집으로 갔다. 관상쟁이 할머니는 김군에게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문제없겠다"라고 말했고 김군의 형에게는 "누워서 대학에
들어갈 테니 아무런 근심도 말아라"라고 말하였다. 두 달이 지나서 김군은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그의 형은 대학 입시에 떨어져서 재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번째 예로 최교수는 풍수지리에 밝았으며 또 실제로 묘자리를 보아주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시골에 가서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그곳에서 역학에 정통한 은사를 만나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심지어는
신선의 도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인상을 받았다. 사십 중반에 어느 대학의 교수가
된 그는 강의 시간에도 자신의 믿음을 간간이 털어놓곤 하였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통일하면 앉은 채로 허공에 둥둥
뜬다." "마음을 집중하면 십리길도 한걸음에 치달릴 수 있다." "벽을 바라보며
마음을 깨끗이 하면 온누리의 진리가 다 보인다." 이와 유사한 예로는 임모씨의
예를 들 수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지위에 있으며 학문도 깊은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몇 대 할아버지 때부터인지 집안이 계속
기울어가고만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 그는 문중에서 한사코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10개의 무덤이 모두 벌레와
습기 투성이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양지바른 곳으로 묘를 옮겼더니 그 다음부터는
집안이 점차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번째 예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군이 정신병 증세를 나타낸 지 네 달째나
접어들고 그 동안 박군집에서는 교회 목사를 불러 안수 기도를 받게 하기도 했으며
정신 병원에 두 달 입원도 시켜보았으나 차도가 없자 이름난 무당이라고 하는 쌍둥이
무당을 불러 굿을 벌리기로 했다. 쌍둥이 무당은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3일 동안
굿을 하면서 박군은 분명히 정상인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을 하였다. 박군은 보름
후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제 가지 예를 들어보았다. 첫번째 예는 관상의 경우이다.
사실 잘 먹고 잘 살아온 과거를 지닌 사람의 얼굴은 윤기가 흐르며 앞으로도
얼마간은 그 상태가 계속될 확률이 많다.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얼굴로 표현한다.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은 자연히 어두운 얼굴일 테고 노력하며 꾸준히 자기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칠 것이다. 점쟁이에 따라서 그러한
감각이 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보다 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장님 점쟁이가 점쟁이 업을 청산한 다음 자신은 손님의 목소리와 옷 스치는
소리에 따라서 점을 쳐주었노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점을
치거나 굿을 하거나 또는 지관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현실의 물질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들은 물질의 욕망을 만족시키면 정신적인 욕망도 따라서
충족되리라고 믿는다. 또한 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점, 굿, 작명 등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나와 우리 집의 부유함과 편안함만을 목적으로 하고 우리들
모두의 행복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삶이 스스로의 결단과
노력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외부적인 힘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믿는다.
철학은 필연적으로 전체성에 관한 통찰을 전제로 삼는다. 철학이 인간 사회를
문제로 삼을 때 개인과 가정과 사회 및 국가 모두가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나만이 존귀한 것은 아직 미신의 차원이다. 왜냐하면 미신은 오직
부분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철학이 앎을 문제로 삼을 때, 인간이 앎을
구성하는 과정과 능력에 의하여 분명히 참다운 것과 거짓된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신은 무조건 어떤 대상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으며 그 이외의
것은 모두 헛된 것이라고 고집한다. 선과 악을 다루는 가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신은 확실히 인간에게 어느 정도 감정적인 만족을 채워주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의지하여야 할 곳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을 때 미래의 행복을 분명히
보장해준다고 하는 상징은 욕구불만을 얼마간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인간이 무한히
외적인 것에 의하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려고만 한다면, 그의 욕구충족은 끝까지
완성되지 못한 채로 언제까지나 외부적인 힘에만 자기 자신을 맡기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미신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이며 그것도 발전되지 못한 하나의
방식이지 결코 삶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미신이 널리
퍼져 있어서 세력이 강한 사회에서는 자연적으로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발전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회에서는 정치, 경제적으로는 영웅주의가,
예술에서는 천재론이, 종교에서는 절대적인 인간만이 엄청난 힘을 소유하여 여타의
인간들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를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기를 포기하게끔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점, 굿, 풍수지리, 작명 등을 통하여 자신과 가정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욕구가 달성될 수 있기는 해도 언제나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의 의식이 자기 반성을 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미신을 철학과 동일시한다. 미신은 철학이 출발할 수 있는 시초가 되기는
해도 전적으로 철학과 동일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미신은 여전히 부분적이며
외부적인 데 비하여 철학은 전체적이며 내면적인 성격을 본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미신이 지배하는 사외에서는 인간 의식과 문화가 현실적으로
전개될 수 없다.
'哲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로운 개인의 권력은 원칙적으로 어떠한 타인에게도 결코 양도될 수 없다. (0) | 2012.11.03 |
---|---|
국가는 문명사회의 상징이다. (0) | 2012.11.03 |
권력을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순간. (0) | 2012.11.03 |
절대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에서. (0) | 2012.11.03 |
미모가 아름답고 추앙받던 여배우는... (0) | 2012.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