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독스 이솝우화

벌과 벌새

별관신사 2013. 5. 21. 06:51

누가 먼저 꽃밭을 찾아냈는가를 놓고 벌새 한 마리와 벌 한 마리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먼저 찾아낸 쪽이 그 꽃밭 전체의 꿀을 빨 권한을 갖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옥신각신 끝에 분을 이기지 못한 벌이 침을 드러내서 상대를 찌르려 했다.


이 멍청한 벌레야! 벌의 무기를 슬쩍 피하면서 벌새가 말했다. 나를 찌르고 나면 너도 죽게
된다. 죽고 나면 꿀이 다 무슨 소용이냐?

잠시 멈칫하더니 벌이 물었다. 죽어? 죽는 게 뭔데?


벌이 그 말뜻을 정말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벌새가 대답해 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죽는다는 건 네가 다시는 아름다운 경치도 못 보고 꽃향기도 못 맡고 꿀도 못 따고 다른
동료들하고 붕붕 수다도 못 떨게 된다는 뜻이야. 넌 날지도 못하고 기지도 못하고 더듬이를
움직이지도 못해. 다리와 날개와 몸이 바슬바슬 말라서 결국에는 바람에 날려가고 마는 거야.
이걸 몰랐단 말야?


저런, 저런 끔찍해.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놀란 벌이 얼른 벌통으로 날아
돌아갔다. 꽃밭은 그냥 벌새한테 넘겨주고서. 며칠 동안 벌통 한구석에 웅크리고 틀어박힌 채,
벌은 먹지도 않았고 친구들과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든 죽는 것만 모면할 수 있다면
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때 죽음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난 것이다. 벌은 그 길로 벌집을 나와 벌새를 찾아 날아갔다. 죽음을
자기에게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자 벌이 말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떄 선생님께서 죽음에 대해
알려준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그동안 전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땐 너무 놀라서 더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었지요. 그래서 이렇게 여쭤보는 겁니다만, 그럼 만일 제가 침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래도 죽어야 됩니까?

벌새가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넌 대단히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자기가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생물은 누구나 그런 충격을 받게 되지.

그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저의 숙명입니까? 벌이 물었다.


그렇다니까! 한참 어리석은 질문에 짜증이 난 벌새가 툭 쏘듯이 말했다. 하지만 네가 어떤
식으로 끔찍하게 죽을지는 미리 알 수 없어. 저녁 공기를 가르고 휘익 나타난 딱새한테 한
입에 꿀꺽될지도 모르고, 커다란 말벌이 너를 마비시켜 놓고 네 몸 속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깬 새끼들이 살아있는 너를 야금야금 먹을지도 모르지. 그것뿐인 줄 알아? 운이 나빠서 해충을

잡으려고 뿌리는 살충제를 조금이라도 입에 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그땐 너의 그
원시적이고 조잡한 신경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 속에서 그냥 끽하고 마는 거지.

제가 파랗게 질리는 모습을 보시려고 지어내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벌이 되받아 말했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목숨, 무의미하게 죽느니보다 나와 동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침이라도 쓰고 죽는 게 낫겠군요.


맞아. 바로 그거야. 벌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은 몸을 날려 자기 침을 벌새의 목
정맥에 꽂아넣었다. 그리고 행복하게 죽어갔다.

교훈:수단은 목적을 정당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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