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넉 사. 面:낯‧겉‧대할 면. 楚:초나라 초. 歌:노래 가.
[준말] 초가(楚歌).[동의어] 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참조] 건곤일척(乾坤一擲), 권토중래(捲土重來), 걸해골(乞骸骨).
[출전]《史記》〈項羽本紀〉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 노래란 뜻. 곧 ① 사방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②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③ 사방으로부터 비난받음의 비유.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騅)라는 준마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時不利兮騅不逝(시불리혜추불서)]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騅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