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이야기

사물의 본질에 관하여.

별관신사 2015. 3. 12. 17:13

책상을 보고 책상은 이렇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되풀이 해서 중얼거리는
모습 물론 이것은 사후적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이런 반복적인 사후적 응시를 통해 어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것만

같은 느낌. 즉 본질에 대한 착각이 함께 발생한다.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에
따를 때 자신이 사후적으로 구성한 본질을 우리가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순간 의도치 않게 우리 자신은 보수주의자로 변할 수도 있다.

가령 누군가가 책상에 걸터 앉으려고 한다면 책상의 본질을 맹신하는
사람은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만약 이 상대방이 자신의
아이였다면 본질주의자는 분명 아이를 야단쳤을 것이다.

책상에 걸터 앉는것은 책상의 본질 즉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는 본질적
행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이 간단한 하나의
삭례만 보더라도 흔히 본질주의자라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볼 때 의도했던

그렇지 않든간에 보수주의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질주의자는
사물의 사용목적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집착한다. 나아가 자신이 믿고 있는

본질을 어기는 타자에 대해서는 폭럭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들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보수적인 본질주의자로써
삶을 영위하고 있다. 다음은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에 괸해서 그것들의 목적이 이러이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본질적인것은 그것이 하나의 램프라는 것 빛을 비추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방을 장식한다거나 빈방을 채운다고 하는 따위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그러나 본질적이니 하는 것들이 언제나 명료하게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