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독스 이솝우화

사자와 여우와 사슴

별관신사 2012. 10. 29. 16:56

이젠 늙어서 사냥할 기력조차 없는 사자 한 마리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굴 속에 누워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여우 한 마리가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기진맥진한 사자가 말했다.
이보게 친구, 자네가 정말 소문만큼 영리하다면 이 굴속으로 먹이감을 유인해 와서 내 앞까지
끌고 올 수 있어야겠지? 길 잃은 생쥐나 새 둥지의 알 도둑질 정도로는 안 돼. 전리품은
또같이 나눠 주고 양껏 먹게 해 줄테니, 어때 해 보겠어?

사자의 동지가 되어 손해 볼 건 없겠다 생각한 여우가 말했다. 그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 보죠. 그리고 나서 여우는 봉을 잡으러 숲속으로 들어갔다.


시냇물에 목을 축이면서 물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은근히 감탄하고 있는 사슴을 본 여우는
마침 적당한 후보를 만났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우는 사슴에게 말을 건넸다. 굉장한
소식이야. 동물의 왕 사자가 지금 힘이 다 빠져서 오늘 내일 하는데, 너에게 자기 뒤를 이어
왕이 되어 달라는 거야. 나더러 너한테 알려주랬어.

부쩍 의심이 간 사슴이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영악한 놈이니까 모르긴 몰라도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그래 안 그래?

짐짓 분개한 듯 여우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제길, 사자가 어쩔 수 없어서 선택을 한 거지.
사자가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걸 왜 모르나, 그걸 모르면 자네도 마찬가지로 바보야.

하긴 그래. 자기 뿔을 자랑삼아 여우 앞으오 한번 휭 돌리면서 사슴이 말했다. 외모로 보나
지혜로 보나, 널리 존경을 받고 있는 내가 왕이 되는게 하긴 당연하지. 허우대가 벌써 제왕의
풍모잖아. 여우, 자네 말이 맞긴 맞아. 사자도 아마 나를 뽑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테지, 뭐


그러자 이번에는 여우가 재촉하는 것이었다. 자, 그럼 빨리 서둘러 사자한테 가세. 그래야
사자가 자네를 공식적으로 자기 뒤를 이을 통치자로 지명할 수 있지 않겠나, 가자구.

아무 의심도 남아 있지 않은ㅁ 사슴은 여우의 발뒤꿈치만을 따라갔다. 드디어 사자의 굴에
이르렀다. 사자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사슴을 덮쳤다. 하지만 노쇠한 사자는 기껏 사슴의 귀만

할퀴고 말았을 뿐이었다. 당연히 사슴은 사자의 손아귀를 빠져나갈수 있었다.
간이 콩알만해진 사슴은 그 길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깊은 숲속으로 도망가 버렸다.

여우는 사자의 무능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말을 안 해도
내가 이렇게 무기력해진 걸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제 잔소리리는 그만하고 다시 한번
그 사슴 녀석을 내가 잡을 수 있는 데까지 끌고와 줘.

아니, 여길 한번 왔다가 갔는데 다시 또 오겠습니까? 거의 불가능입니다. 여우가 대답했다.
어쨌든 하긴 해 보겠습니다.


사슴의 발자국을 찾아낸 여우는, 단단히 겁을 먹고 덤브 숲에 숨어 있는 이 동물하테
다가갔다. 어디 다른 데로 가는 척하면서 여우가 말했다. 너를 왕으로 만들기 전에 네가
겁쟁이라는게 밝혀져서 정말 다행이야. 지금 곰 한테 사자의 뒤를 이어 왕이 되라고 전하러
가는 길이야.


뭐! 사슴이 펄쩍 뛰었다. 이 사기꾼 같으니! 내가 겁쟁이라고? 그럼 넌 내가 멍청히
잡아먹히길 바랐단 말이야? 말을 함부로 하고 있어.

이 말을 듣고 여우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물론 그런 척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자는 그냥 너를 껴안고 숨을 네 귀에다가 불어넣어 왕이 되는 걸 축하해 주려고 했을
뿐이었어. 자기가 겁이 많아서 왕자리를 박차 버리고는 무슨 소리야.


내가 사자의 동작을 오해했구만, 난 또 그런 줄도 모르고. 사슴이 말했다. 하긴 사자가
나한테 해명할 기회도 안 주고 다른 놈을 뽑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명예가 탐이 나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곰이 왕이 되면 벌어질 일이 눈에 선해서 그러는 거야. 곰의 행실을 잘
알잖아.

옳은 말이야.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백 번 얘기해 봐야 소용없어. 난 다만 전령에

불과하고 명령받은 대로 할 뿐아나까.

한번만 더 내가 사자 앞에 갈 수 있게 해 주게. 내가 용서르르 잘 빌어서 사자가 원래
생각대로 나에게 왕자리를 물려주도록 설득할 자신이 있다네. 사슴이 애원했다.


곰한테로 다녀오라는 명령을 거역했다고 사자가 화를 낼텐데... 그렇지만 나도 정의가 이땅에
실현되길 바라는 동물이니까. 여우가 말했다. 좋아. 자넬 다시 데려가지.

그래서 사슴은 신이 나서 다시 사자의 굴로 들어갔다. 그날 밤 사자와 여우는 사슴 뼈다귀를
맛나게 뜯으면서 사슴의 자화자찬을 마음껏 웃어 주었다.

교훈:실수를 반복하라. 밑져야 본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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