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의 차가움이 사리지고 가슴의 따뜻함이 드러난다. 보다 인간적인
사람이 된다. 붓다는 초인이다. 거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인간적인 차원을 찿아 볼 수 없다. 그는 탈속의
사람이다. 그래서 붓다에게는 탈속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그리스인 조르바
의 아름다움이 없다. 조르바는 대단히 세속적이다. 나는 그대가 분리되기를
윈치 않는다. 나는 그대가 조르바 붓다가 되기를 바란다. 명상적이면서
동시에 느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대는 명상적이면서
동시에 느낌과 사랑으로 넘쳐 흐를 줄 알아야 한다.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대의 사랑이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고 느낌으로 남는다면 그 사랑은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사랑은 현실속에거 표현하고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존재와 느낌과 행위 이들이 인간의 세 차원이다. 우리는 행위를
통하여 모든 형태의 창조를 표현한다. 음악과 시와 조각 회화 건축 과학
기술 등의 모든 창조를 행위를 통하여 표현한다. 느낌을 통해서는 사랑
과 미학 등 아름다운 것이 표현된다. 존재에서는 명상과 각성과 의식이
흘러 넘친다.
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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