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신을 찾는 일

별관신사 2014. 8. 9. 22:42

우리들 모두, 특히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 곧 사회로 나가 이 세상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중 하나가 바로 개혁의 문제입니다. 갖가지 부류의 사람들
-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그리고 온갖 종류의 개혁가들 - 이 다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든

바꾸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대로 이 세상에는 아직 국민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가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입지 못하고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자, 어떻게 하면 본질적으로 개혁을 하되, 혼란과 분쟁은 피할 수 있을까? 이게

바로 진짜 문제 아닙니까? 역사를 조금 읽어 보고 현재 역사의 추세를 들여다보면 다 알
것입니다. 아무리 바람직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른바 개혁이라는 것은 늘 다른
형태의 갈등과 혼란을 야기시키며, 이 참상과 대결하려면 더 무서운 법, 더 튼튼한 대비책,

그리고 대비책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개혁은 새로운 혼란을
야기시키는 법입니다. 이걸 바로 잡으려면 또 다른 혼란을 야기시키는 법입니다. 이걸 바로
잡으려면 또 다른 혼란이 오지요. 따라서 악순환은 끝없이 계속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자,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백 번
옳지요. 하지만 다른 혼란을 야기시키지 않고도 개혁할 수가 있을까요? 이게 바로, 생각있는

사람이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 보았음직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개혁이 필요하며 어느 수준의 개혁이 가능하냐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개혁이
필요할 정도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도 개혁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리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겁니다. 조그만 학교에서든 큰 대학교에서든 추상적, 이론적인 방법으로 할 게
아니라, 철학이론이나 만들어내고 책이나 써내는 식으로 할 게 아니라, 이 문제와 냉정하게

맞서게 하고 해결책을 찾아내게 하는 것, 이게 교육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인간은
늘 다른 개혁을 필요로 하는 개혁의 악순환에 갇혀 있습니다. 이 악순환을 깨뜨리지 않는 한
우리 문제에는 약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 어떤 사고방식이 필요할까요? 어떤
행동을 취해야, 우리들의 행위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이 많은 문제의 숨통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인간을 이런 식의 삶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어떤 사상운동이 있던가요? 또

하나의 개혁을 필요로 하는 개혁의 모순을 극복할 사상운동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반동의 산물이 아닌 행동이 있는 것일까요?
나는, 또 하나의 참상을 만들어 내는 개혁의 악순환이 없는 삶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종교라고 불립니다. 정말 종교적인 인간은 개혁에 관심하지 않습니다.
정말 종교적인 인간은 사회질서를 변화시킬 뿐인 개혁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찾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찾는 행위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교육이

학생들을 기존 사회의 틀에 짜맞추려고 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학생들을 도와 진리나
신을 찾도록 도와주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젊을 때 이해하는 걸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서

자질구레한 놀이와 오락, 성욕과 하찮은 야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세상과
맞선다는 엄청난 문제에 대한 자각이 날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이럴 때가 되면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손쓰고 싶어하고 일종의 개혁을 시도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면 그 개혁은 더 큰 혼란, 더 참담한 상황만 야기시킬 뿐입니다.
내가 말하는 종교란, 사제, 교회, 조직화한 신앙 같은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를 특정사고와 행동패턴에다 끼워 넣으려는 사회적 장치일 뿐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 희망, 공포를 이용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종교란 진리가 무엇이며 신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신을 찾는 데는 에너지와 폭넓은 지성과 섬세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정말 사회적인 행동은 바로 이 측량할 수 없는 존재를 찾는 행위 안에

있는 것이지 특정사회 대한 이른바 개혁행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찾으려면 모든 사물에 대한 인간관계에의 깊은 사랑과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의 발전과 업적에는 관심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탐구야말로 참 종교입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만이 참으로 종교적인 인간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사롭지 않은 사랑을 지니기 때문에 사회의 국외자로 대접받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그의 행위는, 사회안에 있으면서 개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의 행동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개혁가는 절대로 새문화를 지어낼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종교적인
인간을 찾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찾는 일이 곧 문화를 짓는 일이며 우리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잘 들으세요. 진리의 탐구는 마음에 폭발적인 창조성을 부여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혁명입니다. 왜냐하면 이 탐구행위를 경험한 마음은 사회의 강제와 금제에
오염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인간은
무엇이 진리인지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지어내는 것은 순간순간 진리를 찾아

내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자
자신이 먼저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르침이라는 걸 생활비 버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고, 학생들을 도와 교리에서 자유롭게 해 주고 어떤 종교나 신앙에도 붙잡히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권위를 딛고 서 있는 사람들, 특정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건 감옥의 벽을

치장하는 정도의 개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람만이 혁명적입니다. 교육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길은 이쪽으로만 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