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을 새우는 데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다. 차라지 적게 알 수록 더 과감하게
체계와 이론을 세울 수 있다. 오직 장님만이 빛이 무엇인지 손쉽게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은 알지 못할 때 무식할 때 대담해 지는 법이다.
앎은 사람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대가 많이 알면 알수록 점점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많이 알수록 자신이 무지함을 크게 느낀다. 그래서 진짜로 현명한
사람들은 무지로 돌아간다. 그들은 어린아이나 바보처럼 단순해 지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되려 한다면 이론으로 하나의 체계를 세우려 한다면 그대는 적게
알수록 좋다. 그래야 일이 쉽게 된다. 지적인 문제에만 국한시킨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사색이나
추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대의 존재를 변형시키는 데는 아무런
힘이없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진실로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야
되는 법이다. 사랑에 대한 이론과 철학을 안다고 해서 그대가 몸소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체험만이 그대를 변형시킬 수 있다.
그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대는 다른 사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올때는 이미 그대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그대는 옛날의 그대가
아니다. 거기에 하나의 틈이 생겼다. 엣 사람은 이미 죽었고 새 사람이 나왔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것의 의미이다.
탄트라비전에서.
체계와 이론을 세울 수 있다. 오직 장님만이 빛이 무엇인지 손쉽게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은 알지 못할 때 무식할 때 대담해 지는 법이다.
앎은 사람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대가 많이 알면 알수록 점점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많이 알수록 자신이 무지함을 크게 느낀다. 그래서 진짜로 현명한
사람들은 무지로 돌아간다. 그들은 어린아이나 바보처럼 단순해 지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되려 한다면 이론으로 하나의 체계를 세우려 한다면 그대는 적게
알수록 좋다. 그래야 일이 쉽게 된다. 지적인 문제에만 국한시킨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사색이나
추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대의 존재를 변형시키는 데는 아무런
힘이없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진실로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야
되는 법이다. 사랑에 대한 이론과 철학을 안다고 해서 그대가 몸소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체험만이 그대를 변형시킬 수 있다.
그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대는 다른 사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올때는 이미 그대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그대는 옛날의 그대가
아니다. 거기에 하나의 틈이 생겼다. 엣 사람은 이미 죽었고 새 사람이 나왔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것의 의미이다.
탄트라비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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