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트라에서는 행하는 것이곧 아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앎은 없다. 그대가 뭔
가를 행하지 않으면 그대가 변화되지 않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그대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으면 지적인 차원 이상의 차원으로 옮겨가지 못하면 거기에는
해답이 없다. 물론 여러가지 그럴싸한 대답들이 주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
은 모두 거짓말 들이다. 모든 철학적 해답들이 그러하다. 그대는 하나의 질문
을 던지고 철학은 거기에 맞추어 대답한다. 그러면 그대는 만족 스럽기도
하고 불만족 스럽기도 하다. 만약 그것이 그대를 만족시키면 그대는 철학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그 속에서 아무런 변화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편으로 그것이 그대를 만족스럽게 하지 못한다면 만족할 만한 철학을
만날때 까지 찿아 다닐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그대는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감동받지 않고 상처받지도 않은 상태로 말이다. 그대가 힌두교도
이건 회교도이건 불교도이건 기독교도이건 그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것은 단지 그대를 가리고 있는 가면이며 옷일 뿐이다. 교회나 사원 혹은
모스크에 가더라도 똑같은 사람이 간다. 단지 가면만 다를 뿐이다. 복장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가면과 복장은 모두 가식이며 거짓이다.
그것을 들추어 버리면 똑같은 사람이 나온다. 똑같은 공격성똑같은 분노폭력
탐욕 질투 등등 모든것이 똑같다. 기독의 성이 불교의 성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의폭력이 이슬람 교도의 폭력과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모두 마찬가지 이다. 사람은 같은데 입고 있는 옷이 다를뿐이다. 탄트라는
그대의 옷에 관삼을 두지 않는다. 탄트라는 옷속에 감추어진 그대 자신을
바라본다.
탄트라비전에서.
가를 행하지 않으면 그대가 변화되지 않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그대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으면 지적인 차원 이상의 차원으로 옮겨가지 못하면 거기에는
해답이 없다. 물론 여러가지 그럴싸한 대답들이 주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
은 모두 거짓말 들이다. 모든 철학적 해답들이 그러하다. 그대는 하나의 질문
을 던지고 철학은 거기에 맞추어 대답한다. 그러면 그대는 만족 스럽기도
하고 불만족 스럽기도 하다. 만약 그것이 그대를 만족시키면 그대는 철학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그 속에서 아무런 변화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편으로 그것이 그대를 만족스럽게 하지 못한다면 만족할 만한 철학을
만날때 까지 찿아 다닐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그대는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감동받지 않고 상처받지도 않은 상태로 말이다. 그대가 힌두교도
이건 회교도이건 불교도이건 기독교도이건 그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것은 단지 그대를 가리고 있는 가면이며 옷일 뿐이다. 교회나 사원 혹은
모스크에 가더라도 똑같은 사람이 간다. 단지 가면만 다를 뿐이다. 복장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가면과 복장은 모두 가식이며 거짓이다.
그것을 들추어 버리면 똑같은 사람이 나온다. 똑같은 공격성똑같은 분노폭력
탐욕 질투 등등 모든것이 똑같다. 기독의 성이 불교의 성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의폭력이 이슬람 교도의 폭력과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모두 마찬가지 이다. 사람은 같은데 입고 있는 옷이 다를뿐이다. 탄트라는
그대의 옷에 관삼을 두지 않는다. 탄트라는 옷속에 감추어진 그대 자신을
바라본다.
탄트라비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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