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어릴 때 야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자라면 이 야심은 성취될 수 있을까요?

별관신사 2014. 5. 20. 04:03

크리슈나무르티: 어릴 때의 야심이라는 것은 대체로 오래는 가지 않는 것이지요. 어린이는
기관사가 되고 싶어하다가도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제트기를 보면 조종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가 하면 정치가의 연설을 듣고는 정치가가 되고 싶어하기도 하고, 산야시를 보

면산야시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여자 어린이는 아들딸 많이 낳기를 바라기도 하고, 돈많은 사람의 아내가 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아주 큰 집에서 살고 싶어하기도 하고 그림을그리거나 시를 쓰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자, 이런 어린이들의 꿈은 이루어질까요? 욕망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이루려고 노력하다
보면 슬픔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런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것입니다. 슬픔이라는 것은 욕망의 그늘입니다. 가령 내

가부자라든지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할 경우,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면서까지 내 목적을
이루려고 몸부림칩니다. 그 결과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는 적의가 생깁니다. 내가 설사 바라던
바를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조만간에 다른 일이 생기고 맙니다. 병들거나 욕망을 이루는 순간 더

큰 것에 대한 욕망이 싹트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의 구석에는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야심, 욕망,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성취 욕구는 필연적으로 좌절과 슬픔의 길을 지향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이러한 과정을 한 번 관찰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유명한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 명성과 권력을 획득한 사람들을 한 번 살펴보세요.
그들의 모습을 보세요. 얼마나 슬퍼 보이고, 얼마나 뚱뚱한지, 또 얼마나 뽐내고 있는지 자세히
보세요. 그들의 얼굴은 보기 싫게 주름져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선함 가운데서 꽃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슴에는 슬픔뿐이기 때문입니다.
야심없이는, 지금 그대로인 상태로는 이 세상을 살 수 없는 것일까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인 상태를 이해할 수 있으면 여러분은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는이름 없는 사람으로도 이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성도 바라지 않고, 따라서 야심도없이, 남에게 잔인한 짓을 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부여하지 않을 때 사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돕는 것도 제대

로된 교육이 할 일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온 세상이 성공이라는 걸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난한 소년이 밤낮 쉬지 않고 공부해서
마침내 법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신문팔이하던 소년이 나중에는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입지전적인 성공담에 배불러 있습니다. 이 위대한성공의 그늘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성취시켜야 할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공이, 슬픔을 이해하고 슬픔을 해소시키는 일보다 훨

씬중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