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종교적이라는 것은 실체에 민감하다는 것

별관신사 2014. 5. 19. 02:26

겨자 같이 노란 꽃이 피어 있고, 시냇물이 가로질러 흐르는 초원은 참으로 볼 만한
구경거립니다. 어제 오후에 나는 이런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놀랍도록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아름다움이 무엇이냐고 자신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아름다운 것이나 추한 것을 보면 즉각적인 반응이 생깁니다. 보기에 즐겁다거나 고통스럽다는
반응을 우리는 말로 나타냅니다. "이것은 아름답다.", "저것은 추하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그러나중요한 것은 즐겁다거나 고통스럽다는 느낌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상과 교감

하는일입니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 동시에 민감해지는 일입니다.
자,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상적인
질문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궛전으로 흘려 버리지 마세요. 아름다움을 이해한다는 것은 선한

감정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이 선한 감정은, 우리가 온 마음 온 생각을 다해 아름다운 것과
교감하되, 아무 장애도 없어서 우리의 느낌이 아주 자유로울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 반응을 제대로 알기까지 우리

삶은 참 천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운 산, 들, 강에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이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살아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 여러분, 그리고 나이드신 여러분,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 보세요.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냐? 청결함, 깔끔한 옷맵시, 미소, 우아한 몸짓, 경쾌한 걸음걸이, 머리에
꽂는 꽃, 훌륭한 태도, 간결한 말솜씨, 깊은 생각, 시간을 잘 지키는 등 남의 입장을 존중하는
습관 -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의 일부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지요? 아름다운 건 이런 것들 뿐일까요? 아니면 더 깊고 그윽하게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요?
형태의 아름다움, 구성의 아름다움, 생명의 아름다움 같은 것도 있습니다. 잎이 무성할 때의
아름다운 나무 모습을 보셨지요?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을 때의 그 섬세한 아름다움은요?

이런 것들은 보기에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훨씬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의 외적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미남미녀일 수 있습니다. 용모가 깔끔할 수도 있고, 옷 입는 취미가 고상할 수도

있고, 아주 예의바를 수도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풍경의 아름다움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것에 대한 내적인 감각이 없으면, 겉모습만의 아름다움은 우리 삶을극히 피상적이고 복잡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 삶에 의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나는 아름다움의 외적 표현을 삼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예의바르고, 외모가깨끗하고, 옷 고르는 취미도 고상해야 할 것입니다. 허식이 없어야겠고, 시간도 잘 지켜야겠

고,말도 간결하게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런 것들도 필요합니다.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니까요.
그러나 이런 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외적인 형태와 움직임을 우아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내적인 아름다움입니다. 그렇다면

이 내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건 무엇일까요? 내적인 아름다움이 없으면 우리 삶이 천박해지고
만다는데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너무 바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공부, 놀이, 대화, 웃음, 농담 같은 것으로 꽉 차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도와 이 내적 아름다움을 찾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참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이 내적 아름다움이 없으면 외적 형태나 움직임에는 별 의미가 없으니까요.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인식은 여러분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식입니다.

천박한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움을 알까요?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은 할 테지요. 하지만 이런
사람의 마음이, 정말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때 우리 가슴에서 샘솟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그 자체, 그 움직임에만 관심한다면, 그 마음은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마음

이이런 것에만 관심할 경우 그 마음은 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그런 마음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에 마음 자체에 관심이 없는 마음,
야심에서 자유로와진 마음,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 더 나은 것을 쫓으려 하지 않

는마음 - 이런 마음은 천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선한 것을 만날 때마다 꽃처럼 피어납니다. 무슨말인지 아시겠어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내적인 선함입니다. 내적인선함은 이른바 추한 얼굴까지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적인 선함은 종교적인

감정에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이라는 게 어떤 상태인지 아십니까? 멀리서 들으면 아름답지만, 사원의 종소리와는
관계없습니다. '독자'나 사제들이 집전하는 의식, 그 밖의 제의적인 잠꼬대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적이라는 것은 실체에 민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전존재 - 몸과 마음과 정신 -가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말뚝에 매인 나귀, 마을의 가난한 사람과 더러운 사람들, 웃음, 눈물,
그리고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실존에 대한 이 예민한 감각에서

선함과 사랑이 비롯됩니다. 이 민감한 감각이 없으면 아름다움이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재능이 있고, 옷을 아주 잘 입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고, 몸을 깨끗이 간수한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자신에 관한 일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남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냥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원래 대상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야말
로종교적인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마음에는 실체, 진리, 신의 자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마음은 그런 마음뿐입니다. 어떤 철학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 어떤가치 체계나 믿음에도 갇히지 않는 마음, 마음 자체의 야심에 쫓기지 않아서 늘 예민하고, 깨어있고, 바라보고 있는 마음 -- 그런 마음만 아름답습니다.

젊은 시절에, 몸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간수하는 법, 쓸데없이 꼼지락거리지 말고 똑바로
진득하게 앉아 있는 법을 배워 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식탁의 예법을 배우고 시간을 엄수하는 등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버릇을 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필요하긴 하나

피상적인 것들입니다. 깊고 그윽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것들에만 매달려 있으면
아름다움의 진정한 의미는 영영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떤 국가, 집단, 사회에도 속하지 않는
마음, 권위에 매달리지 않는 마음, 야심에 흔들리거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 그런

마음만이 사랑과 선함 가운데서 꽃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만이 실체로서의 자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만이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 두루
민감한 마음, 이런 마음이 창조적인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끝없이 이해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