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총체적인 변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존재의 총체적인 변화를 실현시킬

별관신사 2014. 5. 22. 04:06

총체적인 변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존재의 총체적인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 노력하면 총체적인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변화라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야심적인 사람이라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야심과 관계된 모든 것,이를테면 희망, 만족, 좌절, 잔학, 슬픔, 무분별, 탐욕, 질시, 애정 결핍 등을 알기 시작했다고

칩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합니까?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노력하거나 야심을 바꾸려고노력하는 것 자체가 다른 형태의 야심이 아닐까요? 여기에는 다른 존재가 되겠다는 욕망이
끼여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욕망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은, 역시 슬픔의 씨앗일 수밖에 없는 다른 욕망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야심은 슬픔의 씨앗이며 야심을 끊으려는 욕망 자체가 슬픔의 씨앗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이 진실을 스스로 꿰뚫어보고 스스로 행동하는 대신, 진실이 저절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진실이야말로 여러분 마음에 변화를, 총체적인 혁명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러자면 면밀한 주의와 통찰이 필요합니다.
사실 듣고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선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래, 선을 실천해야겠구나. 부모님, 하인들, 나귀 그리고 모든것에 대해 사랑을 실천해야겠구나."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랑을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는뜻입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은 가짜 사랑, 맵시만 낸 사랑이 되고 맙니다. 동포애를

실천하려는 국수주의자들의 사랑처럼 아주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사랑이 되고 맙니다. 이런
것을 실천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탐욕입니다. 그러나 국수주의의 진실, 탐욕의 진실을
꿰뚫어보고, 진실에 여러분 자신을 맡겨서 작용하게 하면 여러분은 노력하지 않아도 형제애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되, 그 사랑에
끼여들지 않으면 사랑이 알아서 스스로 작용합니다.